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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음악과 식물

  • 송고 2023.03.17 08:00 | 수정 2023.03.17 08:00
  • EBN 관리자 (gddjrh2@naver.com)


김작가ⓒ

김작가ⓒ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선인장조차 100% 사망률을 보이는 '킬링 핸드'였다. 어떤 식물도 들이지 않고 오랜 시간을 지냈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에서도 결국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있듯, 우연히 집에 들어온 고무나무는 기적의 생존을 해내고 말았다. 모질고 모진 무관심과 방치를 이겨내고 새 잎을 틔웠다. 그 모습이 경이롭지 까진 않았지만 아주 조금 신기했다.


조금씩이나마 관심을 줬다. 양지 바른 자리를 내주고 정기적으로 물을 줬다. 급기야는 생전 처음으로 분갈이란걸 해줬다. 작년 여름 내내, 고무나무는 쑥쑥 컸다. 왜 이제서야 관심을 주냐는 듯 잎을 내고 줄기를 키웠다. 보고 있으니 제법 재밌었다. 별 것도 아닌데, 그저 자연의 이치가 작동하는 것 뿐인데 그랬다.


그 때 부터 하나 둘씩 식물 키우기를 공부했다. 양지와 음지, 반양지와 반음지, 흙마름과 저면관수 등 기본적인 것을 훑고 난 후 당근마켓에서 쇼핑을 시작했다. 꽃보다는 잎이 멋진 게 좋아보였다.


그런데 잎이 멋진 식물, 즉 관엽식물의 이름은 하나같이 특이했다. 필로덴드론, 몬스테라, 알로카시아, 스킨답서스, 칼라데아…. 그걸로 끝나면 좋은데 그 뒤에 또 잘 안외워지는 단어가 따라 붙곤 했다. 필로덴드론 실버나이프,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 다크폼, 몬스테라 아카코야구엔시스, 몬스테라 알보, 스킨답서스 화이트 마블퀸, 스킨답서스 오레우스,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 칼라데오 스트로만데 멀티컬러…. 그 때 접한 단어들로만 가볍게 이 칼럼의 원고를 채울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낯선 이름들을 들었을 때의 반응은 둘중 하나다. 첫째, 러시아 대하소설을 접했을 때의 난감함.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전쟁과 평화>같은 작품을 접했을 때 등장하는 '스키'와 '비치'의 향연에 얼마나 좌절했던가.


이바노비치는 누구고 블라디노비치는 또 누구였지. 이 비치와 저 스키가 몇 페이지마다 헛갈리니 그 때마다 등장인물 페이지로 돌아가서 확인하다보면 내용마저 헛갈리기 일쑤였다. 이제 십분의 일도 안왔는데 이 짓을 무한반복해야 한다니, 하는 마음에 결국 세기의 명작을 완독하기란 불가능했다. 낯설고도 비슷한 이름의 벽이었다.


둘째, 처음 음악에 빠져 들었을 때 접한 밴드 이름의 설렘. 지금의 청소년들이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으로 장르 음악을 시작한다면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매니아 입문 장르는 록과 메탈이었다.


지금처럼 밴드 이름과 음악을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음반을 마구잡이로 살 수도 없었고, 라디오에서 록을 틀어주는 프로는 제한적이었다. 잡지에서 이름과 앨범 커버를 보고 마음에 들어야 음반을 구입할 마음을 먹어야 했다.


밴드 이름은 멋져야할 뿐 아니라 음악 스타일도 녹아 있어야 했다. 메탈리카, 메가데스, 오버킬, 뉴클리어 어설트 같이 끝내주는 이름은 이들이 스래시 메탈을 한다는 걸 보여줬다. 데프 레퍼드, 신데렐라, 스키드 로우, 건스 앤 로지스 같은 끈적끈적한 이름또한 멋졌다.


이제 록에 빠지기 시작한 소년은 그들의 이름을 밴드 고유의 타이포그래피로를 흉내내가며 노트에 쓰고 그렸다. 그렇게 시작한 매니아의 길이 결국 나를 음악평론가로 이끌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식물의 복잡한 이름은 정확히 후자였다. 형형색색의 잎과 라틴어에 기반한 이름은 나를 가드닝의 길로 끌어 당겼다. 수시로 당근마켓을 들락거려 화분을 하나 둘 씩 들였다. 시장에 가면 그냥 지나가던 화원을 곁눈질 하며 눈에 들어오는 놈이 있는지 살폈다.


크게 잘 키울 수 있는 법을 알기 위해 알고리즘에도 안뜨던 유튜브 채널을 찾아 보고, 필요한 기구들도 사들였다. 식린이, 식덕후, 식집사… 뭐라 불러도 좋은 그런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반년이 좀 넘게 지났다. 화분이 스무개가 넘었다. 더이상 놓을 공간도 없건만, 어떻게든 볕이 좋은 자리에 테트리스를 하듯 새로운 화분을 꽂아 넣은 결과다.


과거의 나 또한 그랬다. 주말마다 청계천 음반 도매상을 누비며 새로 나온 음반과 빽판을 한 장 두 장 사모았다. 작은 책꽂이는 곧 가득 찼다. 엄마의 탄압을 피해 침대 밑에 음반을 숨겼다. 이제는 엄마 대신 아내의 작은 타박을 듣는다. 먹지도 못할 풀때기를 뭐하러 그리 들이냐는 반응이다.


인생에 먼저 찾아온 음악과 뒤늦게 찾아온 식물은 같은 운명이지만, 그러기에 결국 만났다. 보통의 가정엔 거실에 TV가 있지만, 우리집엔 오디오가 있다. 오디오와 먼자리에서 먼저 자리잡기 시작한 화분들은 결국 스피커 위와 오디오 장 위를 점령하고 말았다. 볕이 좋다는 이유였지만 음악을 듣는 또 하나의 재미도 생겼다.


주말, 화분에 물을 준 후 잎에 싱그러운 기운이 감돌 때 나는 오디오 앞 쇼파에 앉아 음악을 튼다. 예전에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봤다. 오디오와 식물이 만난 후에 나의 시선은 오디오를 향한다.


스피커 위에 있는 프라이덱과 스트로만테, 오디오장 주변에 있는 실버나이프와 알로카시아를 바라 보며 '식멍'을 때린다. 눈을 돌리면 아레카 야자와 파스타짜넘이 무성하고 큰 잎을 뽐낸다. 활자와 영상을 볼 틈이 없다. 음악도 귀에 더 잘 들어온다.


남성 호르몬 충만했던 시기, 갱년기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시기. 인생의 두 극단에서 만난 존재들이 한 인생, 한 시간에서 어우러진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영어영문학·문화학 전공

-음악컨텐츠기업 일일공일팔 컨텐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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