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융의 미래는 '고객·소통·개방'"…핀테크와 경쟁보다는 '협력' 제휴 확대
"디지털 혁신, 송금 메뉴에 계좌복사 기능 추가한 것처럼 작은 노력 쌓여야 가능"
'손병환'이라는 디지털 전문가를 새 선장으로 맞이한 '농협금융'호의 디지털 사업계획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역 확대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한 지 한 달 만이다.
농협금융의 디지털 혁신 과제가 국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디지털금융에 가장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손병환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진행되는 만큼 농협금융의 디지털 혁신은 남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30년간 농협금융을 위해 일하면서 디지털 전환 능력으로 농협금융 내 '샐러리맨 신화' 기록을 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1962년생으로 진주고와 서울대 농업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농협 내 대표적인 기획·전략통이다. 농협중앙회 조직·인사제도혁신단 팀장, 기획조정실 팀장, 농협은행 스마트금융부장, 농협금융지주 경영기획부문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3월 농협은행장에 오른 이후 1년도 채 안 돼 회장 자리에 앉았다.
디지털 금융 관련 실무에 눈을 뜬 계기는 2015년 스마트금융부장 보직을 맡으면서다. 당시 는 금융권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던 농협은행이 이후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업그레이드하려던 시기였다. 담당 부장이였던 그는 개편에 공들여 보안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이력을 가진 손 회장이 지휘권을 쥐면서 농협금융의 디지털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 회장은 최근 농협금융이 은행·증권·보험 등 모든 계열사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농협하나로마트·NH멤버스 등 범농협 플랫폼은 물론 외부 빅테크·핀테크와도 제휴를 넓혀 농협을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생태계'를 이루겠다는 목표다.
농협 올원뱅크를 계열사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 관문(포탈)으로 만들어 고객이 보다 손쉽게 자산을 관리하고 보험, 결제, 투자 등의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내 손안의 금융비서'를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종국에는 농협만의 차별화된 생활 밀착형 종합플랫폼을 구축, 디지털 금융시대를 선도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농협금융은 올원뱅크를 중심으로 계열사 자체 앱도 정비할 계획이다. 은행은 현재 6개의 뱅킹 앱을 개인·기업용 스마트뱅킹 2개만 남기고 통합한다. 나머지 계열사도 농협금융 통합플랫폼과 문제없이 연동될 수 있도록 고도화를 추진한다. 이를 위해 농협금융은 전 계열사가 참여하는 애자일 조직을 신설, 시작 단계부터 계열사 의견을 조율해 나가며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외부 플랫폼에 서비스 개방하고 협력도 추진한다. 농협금융은 손 회장의 개방형 사상을 반영해 농협의 유통사업 등 내부 조직뿐만 아니라 외부 빅테크·핀테크와도 사업 제휴를 확대하고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손 회장은 시장에서 대표적인 '개방론자'로 꼽힌다. 오픈뱅킹의 시초가 된 금융권 최초의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공개도 손 회장이 처음 만든 개념이다.
이와 관련 손 회장은 농협은행 스마트금융부장 시절 국내 은행 최초로 오픈뱅킹의 기반이 되는 API를 도입해 NH농협은행의 디지털금융 혁신을 이끈 바 있다. 오픈뱅킹은 하나의 앱에서 모든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이고, 오픈API란 누구든 프로그램 개발에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프로그래밍 명령어 묶음(소스코드)이다.
손 회장은 "플랫폼 생태계는 개방과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한다"며 "경쟁보다 상생을 통해 구성원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건강한 디지털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디지털 전문인력에 대한 채용도 확대하기로 했다.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CEO의 관심과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게 손 회장의 생각이다. 농협금융은 계열사의 적극적인 인재채용을 독려하기 위해 자회사 CEO와 디지털부문장 성과평가에 디지털 인재채용 노력도 반영할 계획이다.
손 회장의 핀테크 협력은 은행장 시절에서도 엿보였다. 그는 과거 핀테크 앱 사용자에게 농협은행의 본질적 서비스인 예금, 대출, 카드를 쓰게 하겠다는 전략을 취했다. 자체 앱을 자산관리에 맞게 개편하고, 이동통신 업체와 제휴한 다양한 상품을 내놨다. e커머스 업체 11번가와 핀테크 공룡으로 커가는 토스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손 회장이 구상하는 디지털 사업 철학과 농협금융 플랫폼 사업이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농협금융은 사업 추진에 속도를 더하기 위해 디지털 사업 운영체계도 개선한다.
먼저 지주사와 계열사의 역할 분업을 명확히 했다. 계열사는 동종업계 최고의 디지털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작년에 수립한 DT로드맵 고도화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 지주사는 고객관점 통합플랫폼 추진, 디지털인재 확충 등 그룹 차원의 주요 과제와 함께 계열사를 횡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또한 이상래 디지털금융부문장(CDO, 농협은행 부행장 겸직)이 주관하는 DT추진협의회에 디지털마케팅분과를 신설해 마이데이터 관련 계열사간 협업, 연계마케팅, 외부제휴 등을 금융지주 차원에서 직접 챙기도록 했다. 이상래 부문장은 지난해 손병환 회장이 삼성 SDS에서 직접 영입한 디지털 전문가로 현재 농협금융 DT추진과 전략수립을 총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조직개편 성과도 있다. 은행장 시절 그는 효율적인 의사 결정 체계를 만들기 위해 애자일 조직을 은행에 적극 도입했다. 올원뱅크센터Cell(작은 조직 단위) 등 5개 부문 8개 Cell을 만들고 24개 과제를 맡겨 의미 있는 실적을 냈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12월 선보인 비대면 개인종합자산관리(PFM) 서비스다. 자산·소비 현황과 통계, 금융 일정 등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로 올해 2월에는 VIP금융컨설팅 등으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농협금융 그룹의 DT성과지표도 개편한다. 계열사의 DT추진 성과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성과지표 위주로 개편하고 시장 선도사와 비교를 강화해 계열사의 시장경쟁력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손병환 회장은 "혁신이란 그리 거창하거나 멀리 있지 않다"며 "올원뱅크 송금 메뉴에 계좌복사 기능을 추가한 것처럼 고객을 위한 디테일하고 작은 노력이 쌓여야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고객을 위해 차근차근, 우리가 할 수 있는 디지털부터 시작해 나가다 보면 고객이 먼저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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