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만 300개 이상 없어졌다, 내년초까지 100개 추가 폐쇄 예정
"가이드라인 개정에도 은행 점포 축소 못막았다" 무능한 당국 비판
금융노조가 은행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정 능력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거래와 디지털 전환에 따른 은행 점포 폐쇄가 빨라지면서 당국이 속도 조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無用)한 수준이라는 판단에서다.
금융노조는 갈수록 빨라지는 은행 점포폐쇄에 당국의 강도 높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25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은행노조협의회와 금융정의연대는 이날 오전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감원이 마련한)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은행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 개정 이후에도 은행들의 경쟁적인 영업점 폐쇄는 지속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조치가 현장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노조는 대다수 은행들이 금융산업의 공공성은 외면한 채 비대면 거래 증가와 디지털 전환을 이유로 경쟁적인 영업점 폐쇄에 나서는 악행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 6789개 수준이던 국내은행 영업점 수는 올해 상반기 말 기준 6317개로 4년도 채 되지 않아 472곳이 감소했다. 특히 과거 연 30~40개 줄던 점포 수는 지난해 한 해 동안에만 300곳 이상 감소하는 등 영업점 폐쇄 속도는 점차 더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당국과 은행연합회가 차례로 영업점 폐쇄에 제재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어떠한 제약도 미치지 못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실제, 그동안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운영하던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는 자율 규제인 탓에 은행 점포 운영 전략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지난 3월 금감원의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에 따라 은행 점포 폐쇄 시 '사전 영향 평가'하는 것이 의무화 됐지만 출장소 전환이나 ATM 운영 등 갖가지 대체수단을 허용하고 '지역내 자행 및 타행 위치'를 고려 사항에 포함시키면서 지방중소도시의 경우 지역 내 대체할 지점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영업점을 폐쇄하는 등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도리어 악용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이미 은행 영업점이 지난해 300개 이상 줄었지만, 내년 초까지 추가 점포 폐쇄도 계획된 상황이다. 노조는 "2021년도 9월까지 이미 161개의 점포가 폐쇄된 데 이어 올해 12월에서 내년 1일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 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약 100여개의 점포가 추가로 폐쇄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점포 폐쇄에 따른 인력 감축도 문제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영업점 축소와 비대면 채널 확대가 맞물리면서 은행 직원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데 점포 폐쇄가 계속되면 인력감축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영업점 축소와 비대면 채널 확대가 맞물리면서 은행 직원 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최근 10년 사이 2만5000여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1만7000여명으로 무려 8000명 가량 줄었다.
노조는 "점포 폐쇄가 계속된다면 지속적인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다. 양질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 사회적 부담 역시 심각하게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은행들이 수익에 혈안이 돼 무분별한 점포폐쇄를 지속한다면 금융노동자 고용 위협은 물론, 지역·연령별 금융격차를 확대시키는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영업점 폐쇄 지역 상당수가 이른바 지방과 노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격지가 대부분이라는 점에 대해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노조는 "비대면 거래 증가를이유로 상대적으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노년층 거주지를 중심으로 영업점을 폐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며 "은행이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고려 없이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잇단 지적에 금감원이 기존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을 강화할지 이목이 쏠린다. 다만, 새 수장을 맞은 당국이 본격 업무 시작에 앞서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예고한 만큼 노조의 요구가 반영된 정책이 수반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윤석헌 전 금감원장은 "점포 수를 급격하게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은행 스스로 고객 금융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초래하지 않도록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자제를 권고했었다. 그러나 정은보 현 금감원장은 아직까지 은행 점포 운영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시중은행은 수익성에 직결되는 영업점 운영 전략을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비대면·언택트 금융환경이 일상화된 가운데 점포 폐쇄는 이제 거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는 것이 은행의 논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점포 폐쇄는 은행의 자율적 권리인데 이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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