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이번주 고강도 자구안 제출 전망
두산건설 집착 불쏘시개, 탈원전정책은 부채질
박정원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경영진이 1조원 이상의 자구안 마련에 고심 중인 가운데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발 유동성 위기에 대한 책임논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수년간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비판을 감내해가면서까지 두산중공업 자회사인 두산건설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두산중공업 부실사태의 도화선이 정부의 탈원전정책이라고는 하지만 이전부터 부실계열사 지원에 따른 후폭풍은 끊임없이 제기돼 온 시나리오였다. 이에 따라 박 회장 등 경영진이 온전히 면죄부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이르면 이번주 1조원 규모의 고강도 자구안을 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에 제출할 전망이다.
채권단이 자구안 제출 시한을 따로 제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2분기에만 2조원에 가까운 차입금을 막아야 하는 두산중공업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자구안을 마련한 뒤 채권단과 약정했던 1조원을 수혈받아야 한다.
자구안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두산솔루스 및 두산퓨얼셀 지분 매각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및 두산밥캣간 계열분리 △두산건설 매각 등 복수의 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두산솔루스·두산퓨얼셀은 박 회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2차전지용 전지박과 연료전지 등 신사업을 주도하는 (주)두산 자회사들이다. 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도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계열사들이다.
박 회장 입장에서는 '아픈 손가락'으로 손꼽혀온 두산건설 하나를 치료하려다 수족을 잘라내야 할 판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2010년 이후 세차례에 걸쳐 모회사인 두산중공업을 통해 유상증자 및 현물출자 등의 방식으로 두산건설에 총 1조6000억원 가량을 투입해왔다.
이 과정에서 증권가는 두산그룹이 지주회사 격인 (주)두산이 두산중공업을,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과 두산인프라코어를 지배하는 구조인 만큼 부실 전이 가능성을 수차례 지적해 왔다. 신용평가사들도 관련 계열사들의 신용등급 하락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박 회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경영진은 완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건설은 박 회장이 지난 2005년부터 10년 이상을 근무한 곳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두산건설은 2000년대 '형제의 난' 발발 이후 오너 식구들이 경영권을 골고루 돌려맡는 현재의 승계구도를 정립시킨 두산의 상징과 같은 계열사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책임소재보다는 발등의 불부터 해결해야 할 때"라면서도 "추후 두산 오너가 위기의 근본을 제공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원전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이 지난 2017년 초 사업승인까지 받았던 8조원 규모의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은 정부의 탈원전 선포로 갑작스럽게 보류되면서 논란이 인 바 있다. 두산중공업 재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재계 관계자는 "탈원전정책이 잘못됐다기보다는 국가기간산업인 원자력사업과 지역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에 대한 사후 대안 마련과 충분한 여론 수렴 부재가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다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이 문제를 방치하다시피 해온 데다 현재는 4·15 총선정국으로 여념이 없다.
최근 채권단이 1조원의 긴급수혈을 결정한 것은 정부나 당국이 뒤늦게나마 두산 유동성 위기의 심각성을 파악했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이에 관련해 최대현 산은 부행장도 "시장 안정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했다"라며 "국내 원전이나 발전의 대부분을 시공하거나 관리하는 두산중공업의 중요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현재 두산중공업에 대한 수출입은행 등 금융사들의 전체 대출금(익스포저) 규모는 4조9000억원가량이다. 이번 사태는 산업계뿐 아니라 금융권에 미치는 파장도 크다는 의미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현재는 자구안 등과 관련해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고 채권단과 잘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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