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대출 잔액 5개 시중은행만 73조…분할납부액에 원금까지 물린 돈, 80조 훌쩍
'한계기업X·80% 담보' "부실 가능성 낮다"…순익개선·충당금 환입여부가 문제
금융위원회가 이번 달 종료하기로 했던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를 6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대출 연장조치로 은행에 물린 돈이 130조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은행권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될 경우, 뇌관으로 작용할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는 코로나19로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실물경제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상대로 시행돼 온 대출 원금 상환 만기 연장·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오는 9월까지 연장 실시된다.
금융권의 대출 만기·이자 상환 연장 조치는 이번이 세 번째다. 정부와 은행들은 코로나19 금융지원 방안에 따라 지난해 3월부터 6개월씩 두 차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원금 상환의 만기를 연장해주고 이자 상환을 유예해오다 올해 한 차례 더 연장한 것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대출 상환이나 이자 납부를 유예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그 만큼 갚지 못하는 빚이 쌓여가고 있다는 의미여서다.
실제로 금융사들이 코로나19 여신 지원 정책에 따라 재약정을 포함해 만기를 연장해 주거나, 원금 혹은 이자 상환을 유예해 준 금액은 총 130조355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상당수는 5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에 쏠려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5대 은행이 코로나19 여신 지원 정책에 따라 재약정을 포함해 만기를 연장해 준 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총 73조2131억원(29만7294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별도로 이들 은행들은 대출 원금을 나눠 갚고 있던 기업의 분할 납부액 6조4534억원도 받지 않고 미뤄줬다. 같은 기간 455억원의 이자도 유예했다. 이 이자와 연결된 대출 원금은 1조9635억원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납입이 미뤄진 대출 원금과 이자를 모두 합하면 81조6755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은행권도 코로나19에 따라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는 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덮어두기식 이자유예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자는 내겠지만 코로나19로 원금을 갚기가 벅차니 좀 미뤄달라'는 경우는 원금 만기 연장으로 숨통을 틔워주면 은행 입장에서도 향후 대출 상환을 기대할 수 있지만, '당장 이자도 못 내겠다'는 기업은 긴급 조치가 필요한데 이자 유예로 '연명치료'만 해도 되는지 면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당국은 이 같은 우려를 기우로 보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이번 대책은 코로나19로 인한 직간접 피해가 있는 정상회사에 대한 지원"이라며 "연체, 자본잠식, 폐업이 없는 구실이 없는 아주 정상적인 회사에 대한 지원이라고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만기연장·상환유예 가이드라인은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 등으로 '일시적 자금부족이 발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이때 기업은 코로나19로 직·간접적 피해가 발생한 중소기업·소상공인으로서, 원리금 연체, 자본잠식, 폐업 등 부실이 없는 경우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가 진정돼 정상적인 경제상황으로 복귀하면, 기간을 갖고 천천히 이자를 되갚아 나갈 수 있는 기업이다.
그럼에도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정책은 은행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부실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큰 무리는 없다고 봤다.
권 국장은 "이자 상환유예 부분은 9조 원으로 10조 원 되는 규모로 전체 총 여신의 0.3%밖에 안 됐기 때문에 그리 큰 규모도 아니라 감내 가능하다고 본다"며 "또 만기연장 상환유예 되는 것의 80%는 담보로 다 보장이 잡혀 있기 때문에 실제 부실화되더라도 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향후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실물부문 부실의 금융권 전이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면서도 "다행히 그동안의 꾸준한 건전성 제고 노력 등으로 현재 국내 금융회사의 건전성 지표는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은행 연체율은 0.28%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9%포인트 하락했다. BIS비율은 16.04%로 규제 비율(10.5%, D-SIB 11.5%) 대비 4~5%포인트 가량 웃돌고 있다.
당국의 평가만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부실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은행들도 선제적인 대손충당금을 적립해왔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쌓은 대손충당금은 2조6019억원으로, 2019년(9659억원)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일각에서는 금융 정책에 대한 부실우려는 대손충당금을 늘린 은행들의 조급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은행권의 순이익 감소가 대손충당금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는데, 대손충당금 환입 여부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상 대출의 부실화 규모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앞서 은행은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8~10.8% 각각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KB국민은행은 2조4400억원에서 2조3000억원으로 5.8% 줄었다. 신한은행도 2조3300억원에서 2조800억원으로 10.8%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은 6.1%(2조1400원→2조100억원), 우리은행은 10.3%(1조5300억원→1조3700억원), NH농협은행은 9.6%(1조5171억원→1조3707억원) 각각 순이익이 줄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대손충당금이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업계의 설명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신용손실 충당금 전입액이 1040억원에서 4830억원으로 3800억원 늘어났다. 이 금액이 모두 순이익으로 잡힌다고 가정할 경우 국민은행의 올해 순이익은 2조6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 늘어나게 된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대손충당금을 3610억원 늘렸는데, 순이익 감소 규모(1300억원)보다 2300억원 더 많다. 우리은행도 순이익 감소폭은 1570억원인데, 손상차손으로 4170억원을 쌓아 놓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도 부실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순익 개선과 지표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대출 부실화 정도를 파악해야하는 상황에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등 정책은 이런 상황을 지연시키기만 할 뿐이라는 불만으로 표출되는 감도 없지않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미디어홀딩스
패밀리미디어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