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IRA 폐지 시 불확실성 확대…피해 불가피
"기술력·안전성 입증해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야"
올해 상반기 전기차 수요 성장세가 둔화하며 국내 배터리업계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쳤다.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전기차 포비아 등 여파로 실적 부진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정책 변동, 배터리 안전성 관련 기술·제도 마련 여부 등이 K배터리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관측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업체들의 주력 해외시장인 미국·유럽의 전기차 수요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 상반기 누적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가량 증가했으나 성장세는 2023년 대비 하락했다.
고금리 기조 하에서 내연기관차 대비 높은 가격, 대체제인 하이브리드 차량 수요 강세, 넓은 국토 내 부족한 충전 인프라 등이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반면 중국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구환신(以舊換新·낡은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 지원) 등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따른 수혜가 뒷받침되며 전기차 침투율은 4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배기가스 규제 완화 움직임,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전환 목표 및 투자계획 축소, 미국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 최근 추세를 감안할 때 연초 대비 전기차 및 배터리 수요 반등 모멘텀은 약화된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핵심 시장이다. 김호섭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향후 고용지표 등락과 연계된 수요 변동, 연말 대선 결과에 따른 친환경 정책 변동 여부 등이 향후 전기차 및 배터리 수요 방향성을 판가름하는 주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계승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정책을 포함한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IRA 관련 혜택 축소, 미국시장 전기차 수요 위축, 관세율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 등 측면에서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후 IRA에 따른 전기차 세액 공제에 대해 “너무니없는 일(ridiculous)”이라며 폐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트럼프의 IRA 폐지 공언 등 정책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점은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의 실적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IRA의 주요 인센티브 조항 중 하나인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는 최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수익성 부진을 보완해주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에 반영한 AMPC 효과는 1조2939억원으로 3사 합산 영업이익의 40.2%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2024년 상반기 인식 금액은 8417억원으로 이를 제외할 경우 올해 상반기 국내 배터리 3사는 합산기준 733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된다. 업황 부진 국면에서 이러한 AMPC 수혜까지 소멸된다면 중단기적으로 2차전지 업체들의 수익성 부진이 심화될 수 있다.
물론 IRA 법안의 완전 폐지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IRA 공표 이후 추가 지침을 통해 리스 차량을 상업용 전기차에 포함시켜 실질적으로 전기차 보조금 대상 요건을 완화한 것처럼 트럼프 정부도 행정명령 등의 의회 의결을 거치치 않는 방식으로 IRA 주요 법안의 효과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연구원은 "미국 우선주의와 제조기반 강화를 강조하는 트럼프의 정책 기조와 이에 동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대될 경우 AMPC 수혜 배분 관련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상에 있어서도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전기차 전환 정책 완화나 폐지 등 영향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추가로 둔화될 수 있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보편적 기본관세 도입 등 보호무역 정책 강화는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의 수익성 및 투자자금 소요 관련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민주·공화당 양당 모두 2차전지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중국 견제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은 국내 업체들의 미국시장 내 우수한 입지를 지지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한편 화재 사고에 대한 우려 증가로 단기적으로는 국내시장에서 전기차 구매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 초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화재사고 이후 전기차 및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크게 증가했다. 실제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대수가 증가하면서 화재 건수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내연기관차 대비 화재비율은 아직 낮지만 전기차 화재비율 상승 폭은 더 가파르게 나타나는 추세다.
또 전기차 화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관련 보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며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더욱 증폭시키는 측면도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전기차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전기차 구매를 고려했던 소비자들이 안전성 우려로 변심하거나 결정을 보류할 가능성이 높고 전기차 차주들도 매물을 내놓으며 중고차 시세 하락 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계기로 전기차 및 배터리 화재 예방 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보완되고 국내 업체들의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술력이 입증될 경우 안정적인 전기차 생태계가 구축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6일 국무조정실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정부는 내년 2월 시행할 예정이었던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를 올해 10월로 앞당겨 시범 사업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배터리 인증제는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을 사전에 인증하는 제도다. 정부는 기존에 용량, 최고 출력 등만 공개됐던 배터리 정보와 관련해선 제조사와 형태, 원료까지 의무 공개하도록 했다.
김 연구원은 "국내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자사 전기차 및 배터리 제품의 기술력과 안전성을 입증할 경우 중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와 이를 통한 점유율 확대로 이어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업체들 중 BMS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현대차그룹도 자사의 배터리관리시스템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전기차 무상 안전점검 등을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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