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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트인 조선업계…"RG 발급 쉬워졌다"

  • 송고 2018.01.22 14:34 | 수정 2018.01.22 15:08
  •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정부, 수주 가이드라인 완화...올해까지 '적자 수주' 부분 허용

대형 조선사 공동 수주, 국내 선주 발주시 가이드라인 적용 제외

정부가 선수금 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 발급 기준을 완화하기로 하면서 '수주 절벽'으로 장기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업계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정부가 조선사의 일감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기존 "수주 가격이 원가 이상이어야 RG를 발급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올해 말까지 부분적으로 완화해 생산원가보다 낮은 수주에도 RG를 적극적으로 발급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21일 정부와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조선사가 공동으로 선박을 수주하거나 국내 선주가 발주한 선박을 수주하면 기존 국책은행의 수주가이드라인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등 새로운 수주 가이드라인을 마련,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수주가이드라인이란 선박 건조에 필요한 원자재, 인건비, 건조를 위한 설비의 감가상각비, 이자비용 등 모든 재무적 요소를 포함한 후 건조원가를 산정해 저가수주로 인한 손실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주 시 제3의 기관을 통해 원가검토를 시행하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사업성평가위원회가 서류 검토 및 회의를 거쳐 해당 프로젝트를 분석하면 평가 결과를 토대로 정책금융기관이 선수금환급보증(RG) 지원 여부를 정한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으로 조선사가 선주와의 수주 계약을 마무리짓는데 꼭 필요한 요소다.

신규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생산원가 이하로 입찰가를 적어내는 이른바 '적자 수주'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신규 가이드라인에 따라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9월 MSC로부터 공동 수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11척은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내 대형 조선사가 공동으로 선박을 수주하거나, 국내 선주가 발주한 선박을 수주하면 기존의 가이드라인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국내 조선업이 강점을 지닌 전략 선종을 수주한 경우에는 수주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완화된다.

구체적으로 제조 감가상각비, 일반관리비 등을 원가 항목에서 빼 원가보다 최대 6% 가량 낮은 가격에 수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전략 선종에는 액화천연가스(LNG)선,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LNG-FSRU), 초대형 컨테이너선, 셔틀 탱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등이 포함된다.

남은 일감 규모에 따라서도 수주 적정성 평가 기준이 달리 적용된다. 일감이 10∼15개월치 남은 조선사는 2∼3%, 10개월 미만으로 남은 조선사는 최대 6%가량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수주할 수 있다.

▲ RG발급 확대…글로벌 수주전에서 한국 우위 가능

조선사들은 그동안 정부의 해당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국책은행의 선수금 환급보증(RG)이 이뤄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선주는 RG 발급이 이뤄지고 난 다음에 조선사에 대금을 지급하고, 조선사는 이 돈으로 배를 짓기 시작한다.

금융사들은 조선업황이 꺾이기 시작하자 RG 발급 조건을 까다롭게 했고, 조선사들은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중국, 싱가포르 등 경쟁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적자 수주가 금지되는 바람에 국내 조선사들이 일감을 따내기 어려워 더 큰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 내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선박을 발주한 선사로서는 용선계약 등의 이유로 선박을 인도받아야 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 RG가 발급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과 일본, 국내 다른 조선소들과 치열한 수주경쟁 끝에 선박을 수주한 한국 조선소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RG 발급이 늦어져 이를 기다리지 못한 선사가 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경쟁사나 경쟁국으로 발길을 돌린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선박의 품질이나 기술력이 아닌 RG 발급이 선박 수주에 있어 최대 고비가 되면서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수혜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박을 발주하는 선사의 경우 발주하는 선박에 대해 이미 용선계약 또는 화물운송계약을 체결한 경우가 많다.

통상적으로 선박 발주부터 인도까지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를 감안해 선박을 발주하게 되는데 RG 발급이 지연돼 본계약 체결이 미뤄지게 되면 선사 입장에서는 초조해질 수 밖에 없다.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중국 및 일본의 소형 석유제품선과 피더 컨테이너선 수주가 이어지는 것도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약 10년 전만 해도 소형 석유제품선 및 석유화학제품선의 경우 신아에스비를 비롯해 21세기조선, 삼호조선, 세광중공업 등 국내 중소조선소들이 글로벌 시장을 이끌어왔으나 현재는 이들 조선소 모두 시장에서 사라지고 대선조선만이 스테인리스 스틸 석유화학제품선을 위주로 선박 수주 및 건조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자국 선사가 선박을 발주하고 자국 금융권이 선박금융을 비롯한 지원에 나서면서 현재의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 금융산업에 있어서는 여전히 선진적이지 못하며 이로 인해 다른 경쟁국들처럼 선박금융에 나서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선박 발주 지원이나 금융권의 RG 발급에 있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 공격적인 수주 활동 가능…조선업계 "지속적인 정책 나와야"

특히 금융권의 이러한 원칙으로 중소조선소 경영진에서는 RG 요청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조선소 경영진이 금융권에 문의해보고 안될 것 같은 계약건은 스스로 포기해왔다.

조선소 입장에서는 금융권에 요청한 RG 발급이 거부당할 경우 이후 수주건에 대한 RG를 요청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조선소 경영진들은 미리 금융권의 의중을 확인해보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판단되는 수주건에 대해서는 RG 발급 신청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정부가 RG 발급 기준을 완화하기로 하면서 이러한 폐해도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2009년에서 2017년 사이 수에즈막스급(15만톤급) 탱커선의 신조 선가는 2010년 6680만달러에서 2017년 11월 5450만달러로 최저점을 기록했으며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신조선가 역시 2010년 5700만달러에서 2016년 4200만달러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선박은 유가와 환율 등 시황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투기성 자산으로 고정적 수주가이드라인으로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 선가는 리먼사태가 터진 후 조선의 급락기에 들어서는 2010년부터 지속적 하락세다.

각 조선소들이 원가를 맞추기 위해 절감, 감축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한다 해도 물리적 한계점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조선사들은 무리한 원가절감으로 인해 기자재 산업, 협력사 등의 축소, 폐업등이 지속적 발생하며 한계치에 다다르다 못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며 원가 이하의 ‘저가 수주’라도 해서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등락을 반복하는 어느 지점에 건조 원가에 따른 수주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면 상승기에는 정상 조업이 가능하겠지만 계속되는 하락기에는 조업을 중단해서 수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정부의 수주 가이드라인 완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지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조선산업은 수주를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다음해와 그 다음해에 직접적인 생산량 급감으로 인한 매출감소, 고정비 부담으로 인한 원가상승 등의 원가적인 측면의 불리한 요소들이 작용한다. 따라서 몇년 간격으로 조업 중단 및 재개를 반복하면서도 지속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도 "대표적인 중후장대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은 철강산업과 마찬가지로 한번 가동을 중지하면 이후 재가동을 위해 상당비용이 소요되는 산업"이라며 "선가 하락기에 수주 가이드라인의 벽에 막혀 조업을 중단하게 되면 필수 인력들이 유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영업망 유지와 업계의 신뢰도, 일자리 유지와 지역 경제 등 복합적인 부분을 감안해 최소한의 조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주 가이드라인의 유동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낮은 시장선가는 경기의 영향도 있지만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하려는 선주 측의 가격 경쟁 유도도 한몫을 하고 있다.

중소조선사 관계자는 "최근 선주들은 낮은 가격에 품질이 좋은 국내 조선소로의 발주를 내심 원하지만 국내 조선소들이 정부 및 채권단의 정책에 따라 해당 프로젝트들을 포기했다"며 "이미 선가가 바닥을 찍고 반등하는 시점에 그나마 정부의 RG발급 확대로 이제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많은 수주를 확보해 더 이상 동남아 조선에 안방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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