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밴사 결제망 대신 고객→자영업자 계좌로 대금 이체
소비자 유인성·신용카드 편의성 대체 가능성 모두 '미지수'
#"은행에서 계좌이체 할 때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중국 위챗페이 경우도 0.5~0.6%의 수수료를 받는 겁니다. 이미 있는 망이긴 하지만 돈을 내야합니다. 서울시가 낼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페이가)아무런 돈도 안 든다고 하셔서."(안철수) "후보님, 전문가들이 충분히 검토해서 준비하고 있는 거니까…."(박원순)
지난 6월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안철수 전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눴던 토론 내용 중 한 토막이다. 당시 토론에서 박 시장으로부터 서울페이에 소요되는 구체적인 재원 구조나 시스템 구축, 가맹점 관리, 프로세싱 업무 등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명확하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달 1일 민선7기 지방정부 임기가 시작됐다. 서울페이는 박 시장의 대표 공약이다. 박 시장은 최근 '서울페이 도입 관련 숙의(熟議)'를 주재하며 "서울페이를 올해 안에 출시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점에서 서울페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나, 카드업계는 안착 가능성 면에서 회의적이다.
6일 카드업계 관계자는 "(서울페이 도입은)굉장히 어려운 얘기다. 무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쉽지 않다"며 "대부분 시각은 '현실성이 있느냐'고 보기 때문에 찻잔속의 태풍이 될지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페이는 카드사와 밴(VAN)사, PG사 등 3단계를 거치는 신용카드 결제와 달리 스마트폰으로 가맹점의 QR(Quick Response) 코드를 스캔하면 바로 고객 계좌에서 가맹점주 계좌로 현금이 이체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간 결제망을 거치지 않고 계좌이체 방식으로 이뤄지는 결제이기 때문에 자영업자가 신용카드사에 내는 카드수수료율을 현행 2.5%에서 '제로화'할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구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수료 문제는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며 "공공이 적절하게 개입해서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서울페이의 취지를 설명했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좋은 의도와 목적을 가진 제도라도 효용성·보편성이 담보될 때 제도의 활성화가 이뤄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울페이는 자영업자에게 주는 혜택은 명확하지만 정작 '돈을 쓰는 이'인 소비자들이 느끼는 이점이 불명확하다.
민간 카드사가 제공하는 캐시백, 청구할인, 공항라운지 할인 등 부가서비스보다 비교우위가 있어야 서울페이의 소비자 유인력이 생길 것으로 분석된다. '결제 편의성' 면에서도 QR코드 방식의 결제는 카카오페이 등 이미 상용화된 서비스들이 있어 차별성을 얻기 어렵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비자 유인책을 제공해서 소비자층을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동의하며 "공공사업이랑 연계해 소비자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공공이기 때문에 캐시백을 해주는 건 쉽지 않을 것 같고, 다른 공공사업과 연계해 할인을 해준다든지 등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카드사 관계자는 "공공할인은 아마 버스 등 대중교통 부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그러나 그것만으로 서울페이의 존재성이 부각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서울페이 사용요인을 확대하려면 공공부문에서 할인혜택을 민간 카드사들보다 더 많이 줘야한다. 그리고 이 할인혜택은 서울시 '곳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안 전 의원이 "서울시가 (돈을)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부분과 상통한다. 또 이 경우 수요자들이 얼마나 될지 불분명한 정책에 세금을 투입하는 셈이 된다. 서울시내 카드 가맹점은 약 58만개(국세청 집계)에 달해 시스템 구축비용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소요비용의 추산 △예측되는 초기수요 등 관련 질의에 대해 "저희가 어떤 식으로 (서울페이를)구축할지 최종적으로 확정한 단계는 아니라서 현재 예산산출이 구체적으로 나온 건 없다"며 "(수요는)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다. 차차 진행되면서 검토돼야할 것 같다"고 답했다.
또 '수수료 제로화'가 가능한지 여부도 관심사다. 박 시장은 "카드수수료를 대폭 낮추는 거의 0%대, 제로화 수준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만들었다"고 서울페이를 홍보한 바 있다.
QR코드를 활용한 간편결제인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도 각각 0.6, 0.5%의 가맹점 이용 수수료를 부과한다. 핀테크로 결제과정을 축약했어도 계좌에서 돈이 빠져 나가는 과정은 생략할 수 없다. 즉, 결제를 할 경우 부과되는 '계좌이체 수수료'가 생긴다.
이는 서울페이에도 배제할 수 없는 항목이다. 만약 '제로화'를 위해 시 예산을 투입할 경우 소상공인의 수수료를 시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카드사가 서울페이의 등장에도 낙관하는 분위기인 것은 주수익원인 신용카드 시장이 아닌 체크카드 시장에서 제한적 경쟁이 이뤄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계좌에 보유한 금액 내에서 즉시 결제한다는 점에서 서울페이는 체크카드 성격과 같다. 올 1분기 기업계 카드사 체크카드 발급 비중은 2.5%에 불과할 정도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7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국내 신용카드 보유율은 80.2%에 달한다. 당장 돈이 없어도 결제가 가능한 신용공여 방식의 신용카드가 주는 편의성을 서울페이가 대체할 수 있는지 여부는 미지수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서울페이의 계좌 간 이체 방식은 신용카드의 외상판매 시스템을 대체하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신용공여기능의 도입과 금융시스템을 유지, 제공하는 업무를 지자체인 서울시가 유지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민간영역을 침범한다는 지적도 나타나고 있다. 공공부문의 카드시장 개입은 카드사와 밴(VAN)사, PG사로 이뤄진 결제 생태계의 약화로 귀결된다. 카드고객의 비용 상승과 시장 왜곡으로 이어지는 역기능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신용카드 시장은 양면시장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양면시장은 카드 고객과 가맹점과 같이 상호 이질적인 집단이 플랫폼(카드결제서비스)을 통해 상호작용해 상대방의 시장 참여 규모에 의해 영향을 받는 시장을 뜻한다.
플랫폼 제공자인 카드사가 가격을 결정할 수 있어 정부 규제로 가맹점 수수료가 내려가면 카드회원의 비용을 올릴 수 있다. 카드회원 비용을 올리는 것은 기존에 회원에게 줬던 각종 혜택을 축소하거나 카드 대출 관련 수수료를 인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교수는 "기업들은 마케팅을 펼치고 인센티브도 주니까 서비스 지속이 가능한 것"이라며 "공공이 개발하면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거나, 지자체장이 바뀌면 예산도 불확실하다는 측면에서 민간이 할 것을 함부로 정부가 직접 들어가서 새로 개발하는 것은 안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그걸(서울페이를) 하면 뭐가 좋은지, 비용은 얼마 드는지에 대한 아무런 경제성 검토가 없다"며 "또 저소득층이거나 노인 등 취약계층이 모바일환경 기반의 페이먼트(결제) 시스템을 쓸 수 있는지도 불확실해 소외 우려가 있으며, 과연 개념이 과연 구현 가능한지, 무슨 혁신성과 경제성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공약의 남발"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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