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유행인데, 사실 기존에 출시해 팔고 있었던 투자상품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우후죽순(雨後竹筍) 쏟아지는 각종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투자상품과 관련해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가 내놓은 설명이다. 본래 출시돼 있던 투자상품이지만 일단 앞에 ESG를 붙이거나 아예 새롭게 상품 이름을 변경해 시장에 내놓으면 반응이 괜찮다는 설명도 함께 따라왔다. 일종의 택갈이(Tag갈이, 라벨갈이)인 셈이다.
택갈이란 자사보다 규모가 작은 업체의 상품을 카피(Copy)해 택을 변경하거나, 동일한 상품에 브랜드 상표, 가격표를 다르게 붙여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의류 등 패션업계와 디자인 상품군에서 많이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중 하나다.
택갈이 성행은 단가 차이에 기인한다. 새로운 상품 하나를 만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정성 대비 택갈이는 손쉬운 신상품 출시 방법이기 때문이다. '택' 하나만을 바꾸면 또다른 상품이 뚝딱 출시돼서다.
증권가에도 ESG 투자상품을 중심으로 택갈이 열풍이 불고 있다. 환경에 관련된 모든 상품에 일단 ESG를 붙여 판매하는 식이다. 혹은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상품을 한 데 모아서 ESG 상품으로 출시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ESG와 관련된 명확한 정의는 아직까지 불투명한 상태다. ESG가 기업의 정량적 평가보다 정성적 평가적 성격을 많이 띠고 있어 그 경계가 모호하고, 정성적 평가인 만큼 관점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생길 수 있어서다.
ESG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기업,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확대되면서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기업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방향성이다. 즉 엄밀하게 말해 기업이 추구하는 새로운 방향 혹은 관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연초 CEO 연사를 통해 등장하는 단골 멘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투자자 사회적 책임 확대와 환경, 사회, 지배구조와의 연관성은 어딘가 그 매개가 부실하게 느껴진다. 눈앞에 보이지도, 또 그 정의가 명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모호한 경계성은 일단 상품에 ESG를 붙이고 현란한 설명과 함께 상품이 판매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럴듯하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상품 설명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투자자도 일단 ESG를 붙이면 초기 관심도 자체가 달라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들린다. 이는 개인투자자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ESG 열풍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금융당국이다. 올해 1월 금융위원회는 오는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 의무화 도입을 공표했다. ESG 공시 의무는 2030년까지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된다. 기업의 정성적 평가를 정량적 수치로 환산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아쉬운 점은 ESG의 기준이다. 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유인이 충분한 정성 요소가 정량화 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명확하거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갖춰져야 한다. 무분별한 정성 요소들은 투자자 선택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미디어홀딩스
패밀리미디어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