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창업자→정몽구 명예회장까지…종합제철소 건설 '목표'
포스코 견제·IMF 등 고초, 매번 좌절…정몽구 뚝심 '쇳물에서 車까지'
2010년 첫 고로 화입식 당시 정몽구 명예 회장 "정말 기분이 좋다"
"정말 기분이 좋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게 뜻깊은 날이다. 부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정 명예회장은 무려 14년 간 고초를 겪었다.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아버지의 발언 이후 32년 만에 이룬 성과이다. 2010년 1월 5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고로 공장 화입식을 개최했다.
제선·제강·압연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일관제철소 사업을 향한 열망은 정 창업자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 창업자는 자동차와 조선 사업을 하면서도 원료인 쇳물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했고, 전기로가 아닌 고로를 이용해 쇳물을 뽑아내는 일관제철소가 필요하다고 봤다. 1980년 '제2종합제철소', 1994년 '제3종합제철소'를 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 창업자는 1975년 경일공업(현 현대하이스코)을 설립하고, 1978년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을 인수하는 등 제2종합제철소 건설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정부는 포항제철소에 이어 국내에 제2종합제철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는데, 정 창업자가 인천제철 인수를 통해 사업권을 따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1호 일관제철소를 보유한 국영기업 포항제철(포스코)이 공급 과잉 및 경쟁 심화 우려가 크다며 현대그룹을 견제했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현대그룹에 사업권이 넘어가면 국내 철강 산업이 공멸할 것이라며 결사 항쟁했다. 정부는 이 논리를 받아들였고, 결국 광양제철소 사업자로 포항제철이 선정됐다.
이후에도 정 창업자는 포기하지 않고 1994년 철강 수요 급증에 대비하고 철강 독점 공급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산 가덕도에 제3종합제철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마저도 정부가 무산시키면서 정 창업자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정 창업자의 꿈은 '뚝심'의 정 명예회장이 이어갔다. 정 명예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 취임사에서 "제철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 역시 자동차·선박 등 최종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값싸고 질 좋은 소재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곧바로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을 발족시키고, 경남 하동에 약 8조원을 투입해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명 '하동 프로젝트'다.
정부는 또 다시 공급과잉론을 내세우며 제철소 건립을 불허하겠다는 입장. 현대그룹이 정부 측에 공식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 전이었음에도 말이다. 아버지의 실패를 옆에서 지켜본 정 명예회장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당시 하동을 중심으로 경상도 전역에서는 '현대특별시'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이점을 이용했다. 경남지역과 민관 합동으로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서명한 인원이 무려 280만명에 달했다. 정 명예회장은 독일 티센제철소를 방문해 합작투자 제의까지 받아오며 제철소 건설의 불씨를 살렸다.
정 명예회장의 부단한 노력에도 정부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신규 건설 불가'였다. 게다가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정 명예회장은 제철소 건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그는 2년 만에 프로젝트 팀 해체를 선언하고, 재벌 구조조정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제철 등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한다. 이때만 해도 정 창업자의 목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는 듯했다.
일관제철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목표가 굳건해진 계기는 2001년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핫코일 전쟁'이다. 포스코는 "자동차용 냉연강판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소재인 핫코일을 공급할 수 없다"며 공급을 거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포스코가 '시장지배적 위치'를 남용한다며 과징금을 부여했지만, 포스코는 이에 공정위 시정조치 취소 청구 소송을 내며 공급 거부를 이어간다. 굴욕을 맛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정 명예회장은 다시 한번 일관제철소 건설의 불씨를 살리기 시작한다.
이미 정 명예회장은 사돈 기업인 강원산업(현 현대제철 포항공장)을 인천제철과 합병하고 삼미특수강(현 현대비엔지스틸)을 인수하는 등 조용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매물인 한보철강(현 당진공장)은 포스코·동국제강 등이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국가부도사태 6년이 지난 2004년까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정 명예회장은 예상가액을 뛰어넘는 금액을 제시하고, 근로자 고용 승계까지 내걸며 한보철강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그 결과 현대제철은 연간 조강 생산 규모를 795만톤에서 1295만톤으로 늘리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 명예회장은 숙원이었던 당진에 곧바로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한다.
2006년 10월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사업에 뛰어든 현대제철은 3년 만인 2010년 1월 5일 첫 고로 화입식을 진행한다. 이어 11월 23일에는 제2고로를 가동, 2013년 9월 13일에는 제3고로가 탄생하며 정 창업자의 꿈이 '현실'이 됐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아버지의 말을 입증한 정 명예회장의 뚝심이 이뤄낸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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