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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70주년] 일관제철소 '머나먼 여정'…정몽구 뚝심으로 일궜다

  • 송고 2023.06.08 07:19 | 수정 2023.06.08 09:33
  • EBN 박성호 기자 (psh@ebn.co.kr)

정주영 창업자→정몽구 명예회장까지…종합제철소 건설 '목표'

포스코 견제·IMF 등 고초, 매번 좌절…정몽구 뚝심 '쇳물에서 車까지'

2010년 첫 고로 화입식 당시 정몽구 명예 회장 "정말 기분이 좋다"


2010년 1월 5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고로 공장 화입식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현대차그룹

2010년 1월 5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고로 공장 화입식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현대차그룹

"정말 기분이 좋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게 뜻깊은 날이다. 부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정 명예회장은 무려 14년 간 고초를 겪었다.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아버지의 발언 이후 32년 만에 이룬 성과이다. 2010년 1월 5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고로 공장 화입식을 개최했다.


제선·제강·압연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일관제철소 사업을 향한 열망은 정 창업자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 창업자는 자동차와 조선 사업을 하면서도 원료인 쇳물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했고, 전기로가 아닌 고로를 이용해 쇳물을 뽑아내는 일관제철소가 필요하다고 봤다. 1980년 '제2종합제철소', 1994년 '제3종합제철소'를 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 창업자는 1975년 경일공업(현 현대하이스코)을 설립하고, 1978년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을 인수하는 등 제2종합제철소 건설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정부는 포항제철소에 이어 국내에 제2종합제철소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는데, 정 창업자가 인천제철 인수를 통해 사업권을 따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1호 일관제철소를 보유한 국영기업 포항제철(포스코)이 공급 과잉 및 경쟁 심화 우려가 크다며 현대그룹을 견제했다.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은 현대그룹에 사업권이 넘어가면 국내 철강 산업이 공멸할 것이라며 결사 항쟁했다. 정부는 이 논리를 받아들였고, 결국 광양제철소 사업자로 포항제철이 선정됐다.


이후에도 정 창업자는 포기하지 않고 1994년 철강 수요 급증에 대비하고 철강 독점 공급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산 가덕도에 제3종합제철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마저도 정부가 무산시키면서 정 창업자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현대차그룹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현대차그룹

정 창업자의 꿈은 '뚝심'의 정 명예회장이 이어갔다. 정 명예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 취임사에서 "제철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 역시 자동차·선박 등 최종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값싸고 질 좋은 소재를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곧바로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을 발족시키고, 경남 하동에 약 8조원을 투입해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명 '하동 프로젝트'다.


정부는 또 다시 공급과잉론을 내세우며 제철소 건립을 불허하겠다는 입장. 현대그룹이 정부 측에 공식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 전이었음에도 말이다. 아버지의 실패를 옆에서 지켜본 정 명예회장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당시 하동을 중심으로 경상도 전역에서는 '현대특별시'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이점을 이용했다. 경남지역과 민관 합동으로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서명한 인원이 무려 280만명에 달했다. 정 명예회장은 독일 티센제철소를 방문해 합작투자 제의까지 받아오며 제철소 건설의 불씨를 살렸다.


정 명예회장의 부단한 노력에도 정부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신규 건설 불가'였다. 게다가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정 명예회장은 제철소 건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그는 2년 만에 프로젝트 팀 해체를 선언하고, 재벌 구조조정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제철 등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한다. 이때만 해도 정 창업자의 목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는 듯했다.


일관제철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목표가 굳건해진 계기는 2001년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핫코일 전쟁'이다. 포스코는 "자동차용 냉연강판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소재인 핫코일을 공급할 수 없다"며 공급을 거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포스코가 '시장지배적 위치'를 남용한다며 과징금을 부여했지만, 포스코는 이에 공정위 시정조치 취소 청구 소송을 내며 공급 거부를 이어간다. 굴욕을 맛보는 상황이 이어지자, 정 명예회장은 다시 한번 일관제철소 건설의 불씨를 살리기 시작한다.


이미 정 명예회장은 사돈 기업인 강원산업(현 현대제철 포항공장)을 인천제철과 합병하고 삼미특수강(현 현대비엔지스틸)을 인수하는 등 조용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매물인 한보철강(현 당진공장)은 포스코·동국제강 등이 인수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국가부도사태 6년이 지난 2004년까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정 명예회장은 예상가액을 뛰어넘는 금액을 제시하고, 근로자 고용 승계까지 내걸며 한보철강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그 결과 현대제철은 연간 조강 생산 규모를 795만톤에서 1295만톤으로 늘리게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 명예회장은 숙원이었던 당진에 곧바로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한다.


2006년 10월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사업에 뛰어든 현대제철은 3년 만인 2010년 1월 5일 첫 고로 화입식을 진행한다. 이어 11월 23일에는 제2고로를 가동, 2013년 9월 13일에는 제3고로가 탄생하며 정 창업자의 꿈이 '현실'이 됐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아버지의 말을 입증한 정 명예회장의 뚝심이 이뤄낸 성과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현대제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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