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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노동의 운명

  • 송고 2023.10.25 06:00 | 수정 2023.10.25 15:59
  • EBN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 외부기고자 ()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신(新 Neo)세대가 등장했다. 바야흐로 옥토제너리언(80대들)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은 “일할 수 있는데 왜 떠나야 하나”, “일하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시금 영화를 만들고 있고, 미 대선에서는 사상 최초로 ‘80대 대통령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예상도 점쳐지고 있는 시점이다. 미국의 75세 이상 경제활동 참가율은 이미 10%를 돌파하고 있다.


60대 초반 ‘은퇴 후의 삶’은 현실인 것이지, 단지 영화 <인턴>, 영화 <어바웃 슈미트>의 모습에서만 짧게 짧게 그려지는 픽션이 아니다. 전 세계에 펼쳐지는 현실은 은퇴족들의 노동 현장 재참여다.


마치 레닌이 소비에트 혁명을 시작하면서 “무노동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타파하라”,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마라”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2023년도)를 살아가는 70대, 80대는 혼돈의 20세기 현대사를 경험하였고 현대 산업사회를 창조한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세계대전을 겪었던 사람들 온갖 국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과 사회격동(중국 문혁시대·일본 전공투 세대·한국 민주화운동 등)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근대화를 넘어서 현대화를 단숨에 일구었던 근로자들이었고 산업현장의 역군(役軍)으로 당당히 역할을 다했다. 그럼 이제 쉬어야 하는가. 연로하거나 노동능력이 약소해진 사람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현명한 것인가.


그런데 일하고 계신다. 70대, 80대가 되신 과거 옛 근로자, 자영업자, 사업가 등의 세대들은, 현재에도 쉬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노동을 하고 있다. 배우, 정치인, 방송인, 연구자(교수·학자) 등에서는 이미 70대를 넘어선 인물들이 사회에서 주축으로 활동하는 것을 종종 본다. 고(故) 송해님은 90대 중반이 되어서 작고 2주일 전까지 방송일을 놓지 않으셨다.


이들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생계의 유지 문제일까, 노인 빈곤층의 증가 문제일까. 실상은 좀 다르다. 이들은 다른 연령대에 비하여 연금 혜택을 누리거나 자산가에 속하는 계층 비율도 월등히 많다.


반드시 일해야 한다는 의무 사항도 없는 세대다. 전 세계 65세 이상 인구는 9.8%(7억8300만명)를 초과한 상태이고(2100년에는 24%를 초과해 24억 이상이 될 것) 이들은 이미 소비시장의 주역(큰손)이자 자산(자본) 보유의 한 축이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첫째, 과거의 직업군에 비하여, 육체적인 기력 소모가 상당히 줄어든 직업환경의 변화가 있다는 점이 큰 유인 동기가 된다. 육체적인 완력과 기민한 순발력이 필요한 업무라거나, 같이 일하거나 협업-지시가 필요한 일이 줄어들고, 고도의 전문성과 순도(純度)의 경험·직관이 필요한 업무에 오히려 적합한 인재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경험과 사례를 전수하는 도제식의 업무에는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한다. 둘째, 그들은 스스로에게 노동의 가치를 인식시키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임금을 깎는다손 치더라도, 노동 현장에서 본인이 계속 일하고 있다는 존재감에 주목하는 세대다.


그들은 “은퇴는 현대에나 있는 얘기다”, “나는 일하고 싶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노동 현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 참조)를 내뿜는 당당한 세대라고 본다.


이쯤 되면, 노동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人生)의 종착지(죽음)까지 계속 동반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노동은 인간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는 종식되지 않는 운명(運命)을 타고난 것일까.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이 종말한다고 예고했다(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 산업혁명과 기술 개선으로 산업현장에 필요한 노동력이 감소한다는 것, 작금에도 수천개의 직업과 수천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일응 맞는다. 그러면서 리프킨은 노동상실의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노동의 일터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곳이 계속 줄어든다고 장담할 수 없고, 새로운 형태의 비육체적 노동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요의 측면에서, 누구나 일해줄 사람을 원하고 사회공동체는 인간의 노동을 가치 있게 여긴다.


아울러 공급의 측면에서, 노동을 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노동을 하고 노동을 통해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노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노동은 인간 존재를 계속 이어져가게 하는 힘을 준다. 그렇기에 노동은 종말하지 않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최근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근속기간이 초단기로 짧아지고 있다. 아울러 조기 은퇴족이 늘고 있으며, 이직(移職)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용 노동환경이 연출된다. 누구나 일을 싫어하는 분위기에서 근로자 상당수가 일하지 않는 여유를 즐긴다고도 혹자는 평한다.


하지만 노동은 계속되며 누군가는 우리의 신성하고 소중한 일터를 지킨다. 노동과 그 삶의 운명을 같이하는 누군가가 있다. 대한민국 사회적에서는 은퇴를 명령하지만, 은퇴한 고령자들의 사회 재참여는 거세다. 지금도 노동 현장 곳곳을 누비는 60대, 70대, 80대의 근로자, 자영업자 등의 노동은 우리 대한민국 헌법이 숭앙하는 근로의 가치와 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며, 우리 미래 사회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치열한 일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그들의 활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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