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사, 철광석 등 원재료가격 상승해 후판가격 올려야
조선사, 수입산과 15만원 이상 벌어지는 가격차 부담
수익 내기 어려운 조선향 후판 비중 축소 방안도 검토
하반기 후판 가격 인상을 두고 철강사와 조선사 간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자동차, 가전 등 다른 업종과의 가격협상을 마친 철강사들은 원재료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올해 들어 지속적인 실적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조선사들이 이를 반영해 상반기보다 다소 인상된 수준에서 협상이 마무리되길 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원자재가격 급등으로 손실을 면치 못했던 조선사들은 실적개선에도 쉽사리 철강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중국산에 이어 일본산 후판도 낮은 가격을 앞세워 한국 조선사들과 협상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산 후판의 품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라고 해도 수입산과 가격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후판가격 협상을 두고 철강사와 조선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사들은 자동차, 가전업체들과 올해 하반기 가격협상을 완료한 상태다. 자동차 업체들과는 원재료가격 상승분을 반영해 가격을 인상키로 했으며 3분기 시황이 부진했던 가전업체들과는 동결에 합의했다.
철강사들은 조선사들과의 후판 협상도 조만간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반기 들어 철광석 등 원재료가격이 오른데다 한국전력공사가 추가적인 전기료 인상을 추진하는 만큼 철강사 입장에서는 90만원 중반 수준이던 상반기보다 후판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말 톤당 100달러 수준에 그쳤던 철광석 가격은 최근 120달러를 넘어섰으며 올해 여름 80달러대를 유지했던 유연탄 가격도 다시 100달러선에 근접하며 상승세를 지속하는 모습이다.
오는 10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한전의 전기요금 추가 인상 여부도 관심사다. 한전이 10분기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상반기 에너지 가격 하락과 비용절감 노력에 따른 단발성 흑자에 그치는데다 상승세를 보이는 국제유가, 연말 사채발행 한도 문제 등 리스크는 여전한 상황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원재료가격 상승으로 인해 조선향 후판의 손실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주요 조선사들의 일감이 충분한데다 실적도 개선되고 있는 만큼 하반기 후판 가격은 상반기보다 인상된 수준에서 협상이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사들은 중국 등 수입산과의 가격차이를 강조하며 철강사들의 가격인상 추진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산 후판은 톤당 80만원 초중반 수준에서 수입되고 있으며 일부 물량은 70만원 후반대에도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산 후판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한때 중국산보다 더 많은 수입이 이뤄지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내수 외에 남는 물량을 낮은 가격으로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철강사들은 엔저 효과까지 더해지며 중국산보다 높지만 한국 철강사들보다는 낮은 가격대를 유지하며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조선사가 선박을 수주해 인도할 때까지 통상 2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반해 후판 협상은 반기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수주계약 후 후판 가격이 오를 경우 조선사의 수익성은 악화된다. 지난해 조선사들이 수주 증가에도 적자를 면치 못했던 이유도 톤당 60만원까지 하락했던 후판 가격이 원재료가격 급등을 이유로 120만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와 같은 원자재가격 상승을 이유로 선박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글로벌 조선빅3 모두 흑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상반기보다 소폭 인상된 수준에서 하반기 후판 협상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나 가장 많은 후판을 구매하는 HD한국조선해양과 포스코의 협상 결과에 따라 하반기 후판 가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수익을 내기 어려운 조선향 후판을 줄이고 비조선향 후판 수요를 확대하기 위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25일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조선향 후판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전체 후판 판매량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업의 비중을 45% 이하로 줄이고 해상풍력 등 고부가제품 쪽으로 공급을 늘려간다는 전략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조선사들은 중국산 후판 수입을 늘리면서 현대제철에도 후판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며 “많을 때는 전체 후판의 55%까지 조선사에 공급했으나 이 비중을 45% 미만으로 낮춰 수익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상풍력이나 고부가제품 쪽으로 후판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강종과 수요처 개발에 매진해 조선과 비조선의 비중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가져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사들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세계적으로 우수한 품질의 국산 후판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으나 수입산과의 가격 차이가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통상적으로 선박 건조원가에서 후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벌크선의 경우 이보다 비중이 높은 반면 에너지용 강관이 많이 들어가는 LNG선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후판 가격은 조선사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조선사들이 수입산 후판 비중을 늘렸다고 하나 선사가 중국산 후판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조선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사 입장에서도 고품질의 국산 후판을 사용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수입산과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질 경우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협상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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