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1금융권 PF 대출 '無' 분양실적 저조에 리스크 인식
건설사 PF 우발채무 규모 15조8000억 '18 대비 17% 증가
주요 건설사도 자금 확보 문제로 사업 중 70%는 '미착공'
건설사들의 주택개발 사업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세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택개발 사업성이 곤두박질치면서 금융권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발을 빼면서다.
저조해지는 분양 실적이 원인으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건설사들은 사업 중단 위기에 내몰리면서 악순환을 반복하는 모양새다. 자금 확보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재무구조와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주요 건설사들도 개발사업에서 첫 삽도 뜨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29일 금융권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은 PF 대출 심사를 사실상 중단했다. 올 하반기 들어 1금융권의 PF 대출이 실행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경쟁적으로 PF 대출을 내줬지만 최근 부실화 우려가 커지자 급격히 돈줄을 죄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1만8000가구 수준이었던 전국 미분양 가구 수는 3만1284가구로 2배 이상 늘었다. '악성 재고'라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7130호로 전월 4.4%(300호) 증가했다.
미분양 재고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난해 96%를 상회했던 초기계약률은 올해 87%대로 하락했다. 초기계약률은 분양이 시작된 이후 3~6개월간의 계약률로 수요 심리를 나타낸다. 1순위 청약경쟁률의 경우에도 전국 기준 지난해 연평균 '19대 1'에서 현재 '9.3대 1'까지 내려왔다.
1금융권이 PF 대출을 옥죄자 제2금융권인 증권사, 캐피털사 등은 신규 대출 및 연장 조건으로 연 10~20%의 고금리를 요구하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시장 급랭은 PF 대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연 5.7%이던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평균 금리는 6월 이후 두 배 이상으로 뛰어오른 상황이다.
부동산개발업계 관계자는 "PF 대출은 담보 없이 주택개발 사업에 대한 사업성만 보고 대출해주는 금융인데 시장 상황이 어려운데다 분양 실적도 바닥나는 상황을 금융권이 리스크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경기 둔화와 미분양 급증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자금 확보만 해결되면 문제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주택개발 사업 현황은 금융권의 판단 대로인 모습이다. 실제 건설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업평가(KR)의 '건설업 신용보강 A to Z'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KR 유효 등급을 보유한 17개 건설사의 채무 인수를 제외한 PF 우발채무 총규모는 15조8000억원이다. 2018년 말 13조5000억원 대비 17% 증가했다.
우발채무는 현재 빚은 아니지만 앞으로 특정 요건을 충족하면 채무로 확정될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의미한다. 지금처럼 부동산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경우 자기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시행사부터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발생하고 건설사·증권사 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우발채무가 늘어난 것은 '미착공' 탓이다. 시장 악화로 삽을 뜨지 못하는 상황이라 관련 리스크를 키운 것이다. KR에 따르면 롯데건설, GS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코오롱글로벌,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건설, 한라, 쌍용건설, 한화건설 등은 미착공 비중이 7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KR은 "우발채무는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하지 않더라도 분양성과 등에 힘입어 차환이나 상환 리스크가 부각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금융시장 경색 시에는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성과와는 무관하게 차환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 지속적인 유동성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신규수주 규모, 지역분포 등을 포함한 개별 프로젝트의 사업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도 최근 주택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지면서 금융권이 내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건전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금융안정회의)를 통해 최근 PF 대출 건전성은 대체로 양호하나, 부동산가격이 하락 전환한 상황에서 경제 여건·부동산 가격 기대 변화 등에 따라 건전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에 따르면 금융권(은행·보험·여전·저축은행·증권)의 PF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1∼2013년 PF대출 부실 사태 이후 은행권은 PF 대출을 크게 늘리지 않았지만, 비은행권은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PF대출을 늘렸다.
금융권의 PF대출 연체율은 지난 6월 말 기준 0.50%로 과거 PF대출 부실 사태 당시인 2013년 말(8.2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해 말 0.18%보다 상승했다. 요주의여신 비율도 지난해 말 1.91%에서 6월 기준 2.3%로 높아졌다.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익스포저 비율의 경우 은행권은 12.9%로 PF 대출 부실 사태 발생 직전인 2010년 말(37.4%) 보다 하락했으나 보험(12.6%→53.6%), 여전(61.5%→84.4%), 증권(4.7%→38.7%)은 상승했다. 저축은행의 경우 같은 기간 260.7%에서 79.2%로 하락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
한은은 "PF대출 급증세가 지속되지 않도록 업권별 취급 한도, 건전성 분류, 사업성 평가 등에 대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PF대출 부실이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금융기관들이 리스크관리를 강화하고 손실 부담 능력을 제고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분양 사업 실패 시 PF 보증을 선 시공사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사실이나 결론적으로 대형 건설사의 PF 리스크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이르다는 반대 해석도 나온다.
서현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대형건설사의 분양물량이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사업성이 높은 입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분양 리스크가 적은 편"이라며 "일부 대형건설사들도 대구 등의 지방에서 미분양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시차를 두고 점차 분양률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PF 상환은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려가 되는 부분은 금리 및 분양가 상승과 더불어 분양 수요가 축소되면서 점차 분양물량 감소가 예상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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