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
흔히 오해하기도 하지만, 진실(Truth)과 사실(Fact)은 다르다. 사실들이 모인다고 진실을 구성하지 않는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최소한적이면서 고달픈 것이지, 결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못하다.
인간의 노동은 단순하게 ‘일(working)’이라고 표현된다. 동서고금 명사들이 인간과 삶, 인간과 노동, 삶과 노동에 대해서 ‘고귀’하고 ‘필요’하며 ‘의미’ 있다는 평을 내렸다. 숙명적으로 사람은 본의 아니게 태어나서 어찌저찌한 삶을 영위하는데 결국 그 인생의 평가는 ‘뭐를 했는가’에 귀착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왜'일'하는가. 왜 일은 일생의 시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가. 물론 어느 시ㆍ공간에는, 또 누군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로마시대 귀족이 그러했고 유럽 자본주의사회 유한계급이 그러했으며 지금의 의무교육 학생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아주 좁은 의미에서의 일(노역ㆍ노무)이 없다는 것이지 사실상 그들도 각자의 일(labour)을 하고 있었던 바다.
"왜 일을 하는가". 사람은 일을 해야 살아갈(living) 수 있고 자신의 가치(value)를 안팎으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사람에게 사회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또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이룰 수 있게 한다. 그에 그치지 않고 노동(일)은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스스로도 사회를 향하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좋은 소비재이다. 결국 일은 삶의 ‘수단’이자 삶의 ‘목적’인 가치재라고 할 수 있다.
“왜 일을 많이 하는가”. 누구에게나 일은 일생(일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그만큼의 비례적인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노동은 인간을 생명체로서 유지케 하면서도 종종 인간을 부유하게도 성스럽게도 하는데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이기에 마치 중독(中毒)처럼 인간은 일생의 상당 부분을 일에 소비할 수밖에 없다.
물론 노동(노역)이 의무였던 동서고금의 노예(노비) 신분에서도 노동은 그들 일생의 상당을 차지했던 바였고 전 세계 근대화 시기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1일 12시간 이상을 차지하곤 했었다.
그렇다면 노동의 진실(truth)은 무엇인가. 무엇이 노동을 정의하고, 무엇이 노동을 가치 있게 구성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단순히 위에서 열거한 사실들을 꿰어맞춘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염두할 부분은 일(노동)이 이미 우리 삶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인간이 중도에서 일을 멈추거나 일의 궤도에서 이탈하는 상황에서는 그 인격과 삶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넷플릭스에 ‘일’이라는 주제로 전직 대통령이 여러 사회구성원의 일상을 인터뷰하는 영상이 방영됐다. 이에 따르면, 단순히 한 사람의 일과나 직업을 분석하는 것 외에 일(노동)이 인간(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자신의 생활(이주민·싱글맘·중산층가장 등)과 직업(보호사·금융투자자·운전기사 등)을 서로 분리시키면서 일과(직업·직장)와 휴식(휴가·주말)이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는 삶과 직업이 서로 얽히면서 무려 수십 년간 같은 패턴으로 일과의 상당을 직업 그 자체로 얽혀 생활하고 있는(전문직·음식점자영업자 등) 경우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노동이 가치 있다’거나 ‘노동이 생계에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은 그저 사실로서 그친다. 오히려 노동은 그 진실로서 존재하는데 그 진실은 사회와 사회 구성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노동은 그 자체로서 ‘불가결’하며 ‘필요조건’이고 필수재(necessity)로서 지위를 확고히 가져 왔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근로의 의무’라고 표현한다. 헌법상 우리 사회는 노동을 무가치하게 하는 ‘유한자산계급’이나 일하지 않는 ‘비근로신분’을 두지 않는다.
이제, 노동의 진실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성장궤도의 안착에만 머물러 미래적·사회적 동력을 상실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노동의 가치관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그간 우리는 고급경력일자리-하급노무일자리, 정규직-비정규직, 사용자-근로자 등의 이분법적인 생각으로 교착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노동관으로서는 인력수급(사측)과 일자리문제(노측)를 양쪽 모두 놓칠 수 밖에 없다.
미래적으로는 노동의 관념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누구든지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응당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노동’의 권리·의무가 새로이 정립될 시점이다. 앞으로도 재인식과정을 거쳐 노동이 생산요소이거나 생계수단으로서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대한민국 안의 모든 삶에서 ‘물과 공기’처럼 그 존재 자체로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공공재이자 가치재로서 영속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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