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
올 초 챗GPT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오픈AI의 대표 샘 알트만이 지난달부터 사람들의 홍채 정보를 제공받고 월드코인이라는 가상자산을 지급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알트만은 월드코인 발행 직전 한국을 찾아 ‘홍채 인식’, ‘블록체인’, ‘기본 소득’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만으로 선지자의 예언처럼 월드코인의 발행 취지를 밝혔다. 언어의 경제성이 극대화된 홍보였지만 명확성은 없었다.
7월 25일 전 세계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에 월드코인을 상장하면서 백서를 통해 월드코인의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긴 했다.
샘 알트만과 월드코인 발행사측은 AI 기술의 대두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월드코인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인간은 자신이 인간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생체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월드코인 25개를 즉시 지급받고 이후 매주 1개씩 추가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제공한 홍채 정보는 즉각 암호화돼 저장되며, 이 암호화된 해시 코드로 전 세계 어디서든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할 수 있고, 디지털 세계에서 봇이나 해킹 등에 의해 도용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포용적 금융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상당히 멋진 말들로 공들여 작성된 백서였지만 진행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앙 집중화 방식으로 홍채 정보를 수집·보관·관리하는 민간 기업이, 탈중앙화의 분산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어떻게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신원 인증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본 소득을 제공할 수 있을지 구조적으로 명확히 이해되질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외에도 많았다. 월드코인 프로젝트팀이 밝힌 대로 스캔된 원시 데이터(홍채 정보) 그 자체는 저장되지 않고 스캔 즉시 해시값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누가 확인할 수 있는가. 사실 확인의 주체가 부재(不在)하고, 확인 주체의 부재로 사실 제공 의무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은 대체로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혹 월드코인의 주장들이 사실이라고 해도 수집된 해시값에 대한 보안 관리는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알트만의 발언대로 인간이 인간인 덕분에 제공되는 월드코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수준의 기본소득이 되려면, 무엇보다 월드코인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야 하고, 인간은 월드코인이라는 기본소득을 제공받기 위해서 자신의 생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월드 코인 그 자체로의 쓰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전 세계 모든 부동산 거래 및 관련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발행된 코인이나, 카드 결제나 외환 송금을 대체할 새로운 지불결제 시스템을 제공하겠다며 만들어진 코인처럼, ‘창대한 허구’로 가득 찬 사기성 코인 백서같이 보이는 월드코인을 도대체 샘 알트만은 무슨 생각으로 만든 것일까.
그의 생각은 몰라도 그의 행동이 보여주는 바는 있다. 생성형 AI 챗GPT를 만들어 인공지능 기술의 효용감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고서 동시에 AI 기술로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할 디스토피아적 위기를 설파하고 다니는 알트만의 행동은, 무엇이라도 뚫을 수 있는 창을 팔면서 무엇이라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파는 초나라 장사꾼처럼 ‘모순(矛盾)’된다.
특히나 알트만의 월드코인은 개인정보 민감도가 높고 관련 규제가 엄격한 나라를 피해 홍채 정보 제공의 대가로 지급되고 있다. 미국에선 월드코인 자체를 거래할 수조차 없다. 월드코인 측에선 미국의 가상자산 규제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달리 해석하면 언제라도 미 정부 당국에 처벌당할 ‘여지’를 갖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생체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사생활 침해우려가 있어 각별히 관리에 주의가 필요한 민감 정보에 해당한다. 게다가 홍채는 생체정보 중에서도 정보 제공자이자 출처인 개인에 대한 데이터를 가장 많이 담고 있다.
개인마다 고유하며, 생후 18개월 이후 평생 바뀌지 않고, 생래적(生來的) 질환과 가계(家系)를 추적할 수 있는 유전적 단서를 제공하며, 홍채를 통해 현재의 건강 상태 및 기질, 감정 상태마저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제공자가 사망하는 즉시 바뀌기 때문에 오로지 살아 있을 때만 유효하다. 그뿐만 아니라 접촉하지 않아도 근적외선 적외선 카메라로 인식할 수 있어, 일단 특정된 홍채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스캔될 수 있는 일종의 위치추적기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혹시 샘 알트만은 월드코인을 방패로 내세워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SF 소설 속 ‘범죄예방관리국(Pre-crime)’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려는 건 아닐까.
대체로 개인정보 제공 위험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오늘의 끼니가 내일의 위험보다 더 무서운 가난한 국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헐값에 거둬들인 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생체 정보를 토대로, 월드코인 프로젝트는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쓰고 추적 관찰하면서 예측한 보고서가 얼마나 정확한지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갈 수 있다.
인류에게, 더 정확히는 자신들에게 쓸모 있을 인간들을 미리 추려내고, 불필요하다고 예측되는 인간들을 신속히 폐기하는 기계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인간은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고 기계는 인간을 예측 판단하는 심판관이 되는 사회가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반대로 수많은 데이터로 입증된 사전적 예측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통계를 넘어서는 예측 불허한 선택을 하는 인간의 존재가 끝없이 튀어나오는 예외를 통해, 결국 기계는 인간을 넘어설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샘 알트만이 원하는 것이 인간의 미래 행위를 예측하고 예단하는 ‘다수 의견(majority report)’일지, 아니면 극한의 순간에도 자의적 선택과 선의지로 인간으로서의 존재증명을 하는 ‘소수 의견(manority report)’일지 명확치는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결국 샘 알트만은 인간의 행위와 가치, 가능성을 사전 파악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류를 상대로 월드코인이란 방패를 가장한 가장 예리한 창을 만들어내었다는 현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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