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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線을 걷는 사람들②] 끊이지 않는 조선업 재해…멈추지 않는 하청 근로자의 눈물

  • 송고 2024.09.24 10:00 | 수정 2024.09.24 10:00
  • EBN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떠나간 '베테랑' 상용직 노동자 빈자리, 물량팀·이주노동자가 채워

안정적 고용구조 무너지며 사람 더 많이 투입해도 공정관리 어려워

무리한 작업지시로 안전사고 늘어…작업 중지권 확대 두고 시각차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의 근간인 헌법은 제 10조에서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상 권리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조선업이나 건설업에 종사하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그렇다. 항상 예상치 못한 위험과 마주하고 있다. 행복을 좆아 일터에 나갔다가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오기도 한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게다가 이젠 저임금·고위험·고강도 업무를 이주근로자들에게 넘기는 ‘위험의 이주화’ 현상까지 도드라지고 있다.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타국 땅을 밟았지만 현실은 늘 사선(死線) 위를 위태로이 걷는 신세다. 하청업체 근로자와 이주근로자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는 한국 땅에 없는 걸까. 행복추구권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에 불과할까. <EBN>은 한국의 근로현장 실태를 점검하고 하청업체 근로자·이주근로자들이 실질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폈다.<편집자 주>


조선소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제공=EBN]

조선소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제공=EBN]

조선소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7시 전부터 버스와 오토바이를 이용한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조선소 정문으로 들어선다. 7시 30분이면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출근해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작업준비에 들어간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출근시간과 다르기 때문에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의 도로는 매일 아침 두 번의 '러시아워'가 이뤄진다.


23일 이른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찾아간 경남의 한 조선소 정문은 예전과 다름 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매일 2만5000명을 웃도는 노동자들이 생산현장으로 출근한다. 2010년대 중반부터 수년간 극심한 침체기를 겪은 이후 다른 도시에서 장거리를 출퇴근하는 노동자를 실어나르는 통근버스는 많이 줄어들었다.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정부가 국내 취업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적극적인 이주노동자 유입에 나선 이후 현재도 이주노동자는 증가 추세다.


실제 생산현장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 하청업체 노동자의 설명이다. 다시 호황기를 맞아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글로벌 조선 빅3의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있지만 직접 배를 건조하는 노동자들은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다.


'베테랑'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하청업체 소속이지만 일감에 따라 여러 조선소에서 경력을 쌓으며 현장을 이끌어왔던 상용직 노동자가 부족하다. '수주절벽'으로 조선소를 떠나 평택 반도체공장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고 있는 '베테랑'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용직 노동자의 빈자리는 다단계 물량팀과 이주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 전체 생산작업의 80% 이상이 하청업체에 의해 이뤄지는 만큼 조선사들은 상용직 노동자에 550%의 상여금과 학자금, 성과금 등을 지원하며 관리해왔다.


하지만 '수주절벽'에 이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7만명으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났으며 상여금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기본급에 포함됐다. 실제 받을 수 있는 급여가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평택 건설현장에서 받는 급여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거의 20년만에 조선업이 다시 호황기를 맞이하면서 일감도 크게 늘었다. 생산현장을 잘 알고 이끌어갈 수 있는 '베테랑'인 상용직 노동자도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단계 물량팀과 이주노동자로 채워지고 있으며 조선사들은 이를 더 늘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2016년 경기침체를 이유로 사라졌던 상여금 등은 지금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이김춘택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제공=EBN]

이김춘택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제공=EBN]

이김춘택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생산현장에서는 하청이 일을 다 하는데 상용직 노동자 중심의 안정적인 고용구조가 무너지고 이를 저임금 이주노동자와 다단계 물량팀으로 채우고 있어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상용직 노동자의 빈자리는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난 안전사고와 납기지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 조선소에서 이주노동자 2명 포함 1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으며 사고 내용을 살펴보면 납기를 맞추기 위해 무리한 작업을 진행했던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일이 서툴고 현장이 낯선데다 의사소통마저 어려운 이주노동자의 경우 현장에서의 사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실제로 이주노동자들로만 구성된 작업현장에서 한 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는데 119에 연락할 줄 아는 노동자가 아무도 없어 대응이 늦어진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선소 관계자는 "나중에 구급차가 오긴 했는데 서로 다른 언어로 다친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바람에 부상자를 확인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기능인력을 의미하는 E-7 비자를 받고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증가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비전문취업인 E-9 비자의 경우 일정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요구하나 E-7 비자는 관련 자격증과 3년 이상의 경력만 인정되면 들어올 수 있다. 이마저도 정부가 3년 이상의 경력이란 요건을 삭제하면서 3~4개월 속성으로 용접기술을 배워 조선소에 취업할 수 있게 됐다.


법적으로 한국에서 5년 이상 일을 하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 E-9 비자의 유효기간이 4년 10개월인 이유다. 비자 만기가 가까워졌을 때 고용주가 원하면 고국에 한 번 갔다 와서 연장이 가능하다.


E-7 비자는 매년 갱신해야 한다. 이동과 업체 선택의 자유가 없는 E-7 비자를 받고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고용주의 눈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간 브로커에 거액의 돈을 주고 취업한 경우라면 이를 갚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연장을 해야만 한다.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는 기성금 미지급 문제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해진 기간 내에 작업을 마치지 못할 경우 원청은 기성금 지급을 미루고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일감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특정 작업이 불가피하게 지연될 경우 전체 생산공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소 70% 이상의 공정을 마치고 진수를 해야 하는 선박이 데크하우스조차 탑재하지 못하고 안벽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는 것이 조선소 관계자의 지적이다.


선박 블록의 조립이 이뤄지는 도크에 비해 안벽에 떠 있는 선박에서 작업하는 것은 더 많은 노동력과 비용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렇다고 원청이 기존 계약된 기성금 외에 협력업체에 추가로 지급하는 것은 없다. 무리한 작업을 강요하는 이유이고 언제든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이다.


조선소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해상풍력 사업도 안전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풍력발전설비 좁은 공간에 고층의 구조물을 쌓아올려야 하기 때문에 작업자들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국 기업이 발주한 풍력설비 제작 중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계약관계가 지속되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2년여간 국내 해상풍력 업체와 거래관계를 유지하던 해외 발주사가 거래처를 변경했는데 기존 업체에서 두 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사무실에서 직원이 걷다가 넘어져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유럽 기업들에게 중대재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실 [제공=EBN]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실 [제공=EBN]

조선소 노조는 작업 중지권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업종과 달리 작업 중지권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상시적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청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직영 노동자야 정해진 월급을 받지만 하청업체는 계약대로 일을 마쳐야만 기성금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생산공정이 멈추는 작업 중지권을 발동하는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량팀도 들어가고 이주노동자도 들어가고 사람은 많이 투입된다. 하지만 작업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베테랑'들이 떠나간 조선소는 시급 1만원을 몇백원 넘는 수준의 급여로 운영되는 다단계 물량팀과 최저시급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채워가고 있다.


이김춘택 사무장은 "지금의 호황기가 5~7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이후 다시 불황이 찾아오면 원청은 숙련공이 된 이주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그때가 한국 조선산업의 지속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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