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경제 부흥기에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것은 "하면 된다, 불가능은 없다"로 대변되는 불도저식 리더십이었다. 그 시기의 군사정권이 그랬고, 당시 대표기업이었던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 역시 불도저식 리더십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성과는 훌륭했지만,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불가피하게 피해를 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전무했다.
그래도 70~80년대에는 그게 통했다. 우선은 ´등 따시고 배부른´게 가장 시급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그 이름에 걸맞은 ´소통´과 ´배려´가 중시됐고, 국민들도 먹고 살만해 지면서 ´불도저식 리더십´은 점차 희석됐다.
하지만 현대그룹에서 성장한 경제인 출신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며 ´불도저식 리더십´이 또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은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가 크고 각종 문제점들이 지적돼도 수정이나 중단 없이 밀어붙여지고 있다.
지난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날치기 상정된 법안들은 현 정권의 ´불도저식 리더십´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상정 과정도 문제지만 법안의 내용도 "누가 반발하건, 현실성이 있건 없건, 밀어붙이고 보자"는 식이다.
이날 상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모든 게시물들을 일일이 모니터링해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왜 ´정보의 홍수´라고 불리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내놓을 수 없는 법안이다. 하루에 수백만 개씩 쏟아지는 게시물들을 무슨 수로 일일이 모니터링한단 말인가.
한 발 물러서 "하면 된다"의 정신에 입각, 수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사이버 검열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쳐도 문제는 남는다.
과연 ´불법성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저작권 위반 정도야 다소 골치 아픈 확인 과정을 거치더라도 판단은 가능하겠지만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하는 정보´는 어떤 근거로 판단해야 할까.
모욕의 범위는 워낙 폭이 넓고 자의적인지라 어디까지가 ´모욕´인지 판단의 근거도 모호하다. 본인은 정당한 비판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모욕을 느꼈다면 ´모욕´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규제가 시행될 경우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은 골치 아픈 일에 얽매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웬만한 게시물에는 전부 칼을 댈 게 뻔하다.
결국 사이버 세상은 ´서로 칭찬하는´ 글들만이 떠도는, 매우 아름답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는 세상으로 바뀔 수 밖에.
어차피 사이버 상에 떠도는 이야기들 중 현 정부에 우호적인 내용을 담은 건 그리 많지 않으니 정부로서는 바람직한 일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IT 강국´의 지위는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정치적 방향성에 의해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법안 내용 자체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02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해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규제의 수단은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는 취지의 판시를 한 바 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위헌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다분한 것.
또, 정부에서 광우병 파동까지 감수하며 그토록 열심히 밀어붙이던 한미 FTA 조항과도 충돌된다.
한미 FTA 제30조 나 7항은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서비스를 감시하거나, 침해행위를 나타내는 사실을 능동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이버 상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목소리가 ´소수의 좌익세력´의 선동에 따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누리꾼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 확신하고 있는 정부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일을 꾸미더라도 좀 더 세련되게 꾸몄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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