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 침체기 시작된 지난 2012년 발빠른 내실경영 주효
라이프스타일 변화 성과 미비…자칫 패션기업 정체성 모호우려
오규식 LF 대표는 패션시장의 정체가 시작된 지난 2012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그는 침체된 국내 패션시장에서 지난 4년 동안 평균 매출 1조4000억원대를 유지하며 LF를 지켜나갔다. '유지만 해도 성공'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말이 업계 현실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야말로 오 대표는 LF의 수장으로서 안정적인 경영을 펼쳐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이유로 회사 내부에서도 그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경영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오 대표가 최근 패션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변화를 시작한 것은 파격적인 행보다. 그는 패션을 넘어 뷰티·침구·주류 사업 등으로 확장하며 새로운 캐시카우를 물색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 대표의 안전을 중시한 경영 스타일로 신사업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 중론이다.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변모를 표방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매출에서 패션 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90% 이상으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자칫 새롭게 벌려 놓은 사업들이 LF의 정체성만 모호해 지는 게 아니냐는 업계 일각의 평가가 뒤따르는 이유다.
◆패션업계 침체와 함께한 오 대표의 내실경영…LF 타격 피해
오 대표는 지난 1982년 서강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LG상사의 전신인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1995년 LG상사 뉴욕지사를 거쳐 2004년 패션부문 상무를 지냈다. 2006년 LG패션의 CFO를 역임하고부터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글로벌 감각과 재무통으로 알려질 만큼 전문적인 효율 경영으로 2012년 LF(구 LG패션)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오 대표가 취임한 그해부터 패션업계는 본격적인 침체기에 들어갔다. 후발 주자들이 서브 아웃도어와 SPA 브랜드로 사업을 확장할 때 LF는 내실경영으로 돌아섰다. 당시 LF가 보유하고 있던 전문 스포츠 유통채널 '인터스포츠'와 브랜드 '버튼'을 론칭 3년만인 지난 2014년 라이센스 계약을 종료했다. 저 성장 기조에 맞춘 사업 철수다.
앞서 2012년에는 자사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하는 고급(정통) 캐주얼 브랜드 '헤지스‘에서 스포츠 라인 론칭 논의가 오갔지만 최종적으로 사업 전개를 접었다. 당분간 '굳히기'에 들어서야 한다는 오 대표의 판단이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그해부터 아웃도어, 캐주얼 등 패션 공룡기업에서 후발 주자들까지 전반적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하며 침체기가 시작됐다. 업계는 그제야 내실경영에 돌입했다. 경쟁사인 SK네트웍스는 지난해 결국 패션 부문을 매각했고 삼성물산 패션은 지난해 4분기를 끝으로 자사 일부 브랜드 철수 비용을 모두 털어냈다. 중견 기업인 형지도 최근 유통구조를 다각화 하는 등 LF보다 한 발 늦게 정비를 마쳤다.
LF의 전략은 최근 4년 동안의 재무제표가 증명하고 있다. 연결감사보고서 기준 2012년 매출 1조4600억원에서 2013년 1조4860억원, 2014년 1조4600억원, 2015년 1조5700억원, 지난해에는 잠정적으로 1조5300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평균 750억원을 유지하고 있다.
오 대표의 성공적인 내실 경영 덕분에 LF는 신사업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오 대표는 재무통으로 알려진 것만큼 각 브랜드의 사업 조절 능력이 탁월한 분"이라며 "적절한 시기에 사업을 정비한 것 자체가 LF에는 엄청난 메리트"라고 평가했다.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천명…자칫 모호한 정체성 부각될 수도
오규식 대표는 내실 경영을 바탕으로 최근 패션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증권가와 업계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LF의 신성장 동력의 부재를 의식한 듯 최근 사업 다각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 중 눈에 띄는 부문이 올해 초 발표한 주류 유통업체인 '인덜지' 지분의 50% 이상을 인수한 주류 사업이다. LF는 해외 주류를 국내에 수입하는 인덜지를 자회사로 편입, 크래프트 맥주 생산을 올 하반기부터 시작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해 5월 LF는 서울 청담동에 화장품 플레그십 스토어 '불리 1803'을 론칭, 현재 현대백화점 본점에까지 매장을 오픈했다. 하반기에는 명품 침구 브랜드 '잘라'와 파란엘린과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해 '헤지스홈'을 론칭하고 침구·문구·애견패션 등의 제품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에는 여행용품 편집숍 '라움보야지'를 론칭, 같은 해 인터넷 쇼핑몰 '하프클럽닷컴'을 보유한 트라이시클과 방송채널 '동아TV'까지 인수했다. 실제 오 대표는 최근 2년 동안 사업 다각화를 위해 인수와 합병, 브랜드 론칭 등 동종 업계에서 손 꼽힐 만큼 많은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오 대표의 '돌다리도 두드리며' 진행하는 사업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공격 경영은 여전히 미비한 편이다. 실제 지난해 LF와 종속기업을 포함한 연결감사보고서 기준 매출액은 1조5292억원으로 이 중 패션을 중심으로 한 LF만의 매출은 1조3798억원으로 90.2%에 달한다.
LF관계자는 "그동안 패션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면서 내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상황이었다"며 "패션업계 환경에 맞춰 패션 유통 채널을 이용한 라이프스타일 사업으로 넓혀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하지맛 자칫 LF의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어중간한 변모가 패션기업의 정체성마저 모호해 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F가 국내 패션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기업으로써 신성장 동력으로 패션 R&D사업이 아닌 주류나 침구, 뷰티 분야에 투자하는 것을 보면 사업 방향에 의문이 드는 부문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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