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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서 신용카드사 역할 큰 이유는

  • 송고 2018.10.08 13:45 | 수정 2018.10.08 16:02
  • 강승혁 기자 (kang0623@ebn.co.kr)

KB·신한·하나, 북한금융연구센터·협의체 구성 등 경협 전략 모색

"통일 달성시 구매력 부족 해결, 신용카드 발급이 가장 저비용"

북한의 나래카드와 가맹점 안내문ⓒ여신금융협회

북한의 나래카드와 가맹점 안내문ⓒ여신금융협회

현재까지 남북미 간 대화가 순항세를 보이고 있다. 대북 제재의 키를 쥔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논의했다고 밝히면서 남북 간 경제협력 기대감도 한층 더 커졌다.

금융권도 '남북경협'을 화두로 올리며 북한 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카드사는 북한 진출 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학계의 평가가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KB금융경영연구소 산하에 북한금융연구센터를 설치하고 최근 외부 자문 위원들을 위촉했다. 신한금융지주도 은행, 카드 등 그룹사의 전략담당 부서장 및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를 만들어 남북경협 조사와 관련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대북 경협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금융권과 금융당국 모두 경협금융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역할을 찾는데 부심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남북 정상이 발표한 '평양 공동선언문'에 포함된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해 "금융회사도 (북한에) 들어갈테니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장마당을 중심으로 시장경제가 확산되면서 금융업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신용카드의 활용여부에 따라 금융권의 자산 활용폭이 넓어질 수 있는 만큼, 학계는 신용카드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여신금융협회의 계간지 '계간 여신금융'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카드 지급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신용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주민들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며 "체제전환기의 동유럽 국가 주민들은 신용카드의 사용을 통해 구매력 부족을 해결했다. 일부는 신용을 통해 외상으로 상품을 구매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런 경험을 활용한다면 자본이 부족한 북한 지역에 상당한 소비 활성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양 센터장은 전망했다. 아울러 국내 여신금융사들은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고, 북한에 신용이라는 사회적 자본과 선진 금융기법을 자연스럽게 체득시키는 '금융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양 센터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한시장은 개인 능력에 따라 부를 창출하는 구도가 정착됐고, 대외무역과 서비스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신속한 정보와 외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북한의 시장화율은 80~90%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체제전환 후의 동유럽과 유사한 수준이라는 계산이다.

북한 내에도 자체 카드 결제 시스템이 구축됐다.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조선중앙은행의 '전성카드'를 소개하며 "지금 전국의 수백개의 지점들에 카드취급소가 개설되였으며 인민봉사부문의 1천여개 단위들에 이 체계가 도입되여 경영활동과 봉사활동에서 은을 내고 있다(효과를 얻고 있다)"고 알렸다.

외국인과 북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카드도 나왔다. 조선무역은행은 2010년 12월 외화 전자결제카드 '나래'를 발행했다. 이 카드는 외화를 매일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후 잔고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체크카드'다. 시장 확산과 북중 무역 규모 확대로 북한의 외화사용은 급격히 증가했다. 나래 카드 발행은 외환 안정화 정책에 기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나래카드는 낙후된 북한의 금융수준으로 러시아, 동유럽, 중국에서처럼 대규모로 사용되진 못하고 있다. 신용 공여 기능을 제공하는 신용카드 도입 또한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상업은행이 부재하고 업무의 일부를 조선중앙은행이 맡고 있지만 역할은 미미하다. 이에 대출·송금·환전 업무를 대행하는 사금융업자 '돈주'에 크게 의존한다.

이유진 산업은행 한반도신경제센터 연구원은 "북한은 은행 자금공급이 부족하고 금융기관 신뢰도가 낮아 사금융 의존도가 높다"며 "우리의 금융인프라 개발 공유를 통해 북한의 금융제도가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지원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 센터장은 "한국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단말기나 전산망은 단시간에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 이후 북한 주민에게 신용카드를 보급하는 것이 최적의 정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낙후된 북한의 금융제도를 개선하고 신용을 제공해 소비를 진작, 생활보조금 또는 사회보장금을 유량의 방식으로 지급한다면 화폐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양 센터장은 "한반도 통일이 달성된다면 우선적으로 북한주민의 구매력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며 "가장 저비용의 정책은 북한 주민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 저량(stock) 대신 유량(flow)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동시에 신용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주민들에게 배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북한 시장에는 대출과 신용 등 자본주의적 요소가 도입되고 있는 양상. 이에 견줘 신용카드가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도 갖춰졌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북한전문 기자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가 최근 발간한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의 내용을 보면 평양도 신용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앉은자리에서 전화 한 통으로 상대방에게 원하는 액수를 보낼 수 있고, 자금 수요를 전문적으로 조사해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금융 기업가'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신용이 보장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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