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와인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던 2000년대는 칠레의 와인 가이드 북의 영향력이 대단했다. 직접 테이스팅을 위해 출장을 직접가지 않아도 상세한 테이스팅 노트와 공신력 있는 평가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데스콜챠도스’(Descorchados)라는 이름의 와인가이드 북은 남미에서도 꽤 유명한 전문지로 공신력을 인정받았다. 그 중 2008년도 판은 깜짝 놀랄만한 결과를 공개했다. 당시 프랑스 와인명가와 칠레 최고의 와인가문의 합작와인 ‘알마비바(2004)’를 제치고 하라스 데 피르케라는 (덜 알려진) 와이너리의 ‘엘레강스 카베르네 소비뇽(2004)’이 칠레 최고 와인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총 885개의 칠레 와인 중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최고 점수인 95점을 받은 뒤 동점을 기록한 알마비바와의 비교 시음에서 이긴 것이다. 이로 인해 엘레강스를 생산한 ‘하라스 데 피르케’ 와이너리는 전 세계 와인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 후 이탈리아 와인업계의 대부 피에로 안티노리와의 국제적인 합작와인 알비스를 탄생시켰다. 알비스는 ‘새벽’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와인 명가 안티노리와 칠레의 하라스 데 피르케가 의기투합해 2004년에 최초 빈티지 출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알비스는 대표적인 국제품종 카베르네 소비뇽(Carbernet Sauvignon, 80%)과 까르메네르(Carmenere, 20%) 두가지 품종을 섞어 만든 블랜드 와인이다. 두 품종의 대표적인 특징이 잘 담겨져 있는데 우선 검은 포도과실류와 블랙 커런트 (블루베리로 볼수 있으나 카시스 베리라 부르는 관목의 일종이다)가 느껴지는 과일향을 많이 담고 있다.
코끝에서 아주 미세한 허브와 민트 향을 느낄 수 있는데 와인에서 느껴지는 허브와 민트 향은 의도적으로 기억하고 향을 맡아본다면 마지막 순간에 향을 잡을 수 있다. 칠레의 적포도 품종의 일반적인 특징인 꾸덕꾸덕한 바디감이 도드라지며 카베르네 소비뇽 덕분에 잘 숙성된 탄닌감을 느낄 수 있다.
타닌 때문에 거칠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세한 포도의 잔향이 글라스 안에 남는다. 쉽게 말해 쉽게 재배되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르메네르의 블랜딩 기술덕분에 와인이 튄다거나 하지 않고 무난하며 섬세한 맛을 볼 수 있다. 이 와인은 육류와 먹을 때 위의 테이스팅 노트를 조금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사실 하라스 데 피르케는 ‘피르케의 종마장’이라는 뜻으로 1892년 세워진 칠레 최고의 경주마 목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곳은 이름처럼 종마와 와인을 함께 생산하는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설립자 에두아르도 A. 마테는 훌륭한 종마와 최고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1991년 칠레의 핵심 와인 생산 지역인 마이포 밸리의 피르케 지역에 포도밭 600㏊( 600만㎡) 를 인수해 하라스 데 피르케를 세웠다.
재미있게도 이 땅에는 종마장이 포함돼 있다. 폴로 선수 출신으로 말에 대한 열광적인 애정을 지닌 그가 자신의 두 가지 관심사를 모두 피르케에서 일구기로 결심해서다. 그는 당시 칠레 와인을 이끈 중저가 와인 대신 고가의 고급 와인을 출시한다.
2003년 이탈리아의 세계적 와인 명가 안티노리와 조인트 벤처 협정을 체결하고 ‘안티노리&마테’사를 설립, 칠레 최초의 합작 와인 ‘알비스’를 출시하면서 점점 시장을 사로잡았다. 와인 뿐만 아니라 그가 배출한 종마도 명마로서 세계 시장에서 자리 잡는다.
북미와 남미 지역의 다양한 경주에 출전해 우승하며 명마의 산실로 부각된다. 아버지에 이어 현재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는 에두아르도 B. 마테 사장은 “와인은 인맥, 역사, 인지도가 아니라 와인 자체로만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와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만이 그들의 와인을 성장시키는 동력이라 말한다.
하라스 데 피르케의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데는 친환경적 포도 재배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트렌드로 자리잡은 유기농, 비건 등을 먼저 실천한 것이다. 우선 하라스 데 피르케 와이너리는 포도밭의 토질 관리를 위해 종마장에서 나온 거름과 양조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이용해 만든 퇴비를 사용한다.
창업자 마테는 이런 친환경적 양조 방법이 균형 잡힌 포도 재배 및 와인 양조를 돕는다고 한다. 병충해 및 포도나무의 질병 예방을 위해 천적을 활용해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고, 포도밭 사이에 작물을 경작해 토양의 침식을 막고 양분을 관리해 포도나무에 생기를 더했다. 이 같은 모든 과정이 결과적으로 빼어난 와인생산의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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