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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예비타당성조사

  • 송고 2023.09.04 02:00 | 수정 2023.09.10 17:19
  • EBN 관리자 (gddjrh2@naver.com)

우종훈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우종훈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우종훈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최근 양평고속도로와 관련하여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다. 특히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는 정부의 300억 이상 대규모 재정사업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조사를 통해 재정사업의 신규투자 추진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예타 제도는 1999년 탄생하여 오랜기간 정부의 대규모 재정사업의 효율성 제고 효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제도를 악용하는 곳이 증가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국가 R&D 사업에도 예타를 통해 기획되는 과제가 증가하면서 공식적인 평가 절차를 통해 대규모 R&D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인식이 되고 있다.


본 컬럼은 특정 사업의 정당성을 헤치거나 폄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 글의 목적은 필자가 예타를 통해 경험했던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들의 어두운 면에 대한 총체적 고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


R&D 예타는 어떻게 성사가 되는가?


사업의 추진주체인 유관부처 담당자는 산업계의 요구와 상부의 지시에 의해 예타를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산하 기관을 설치하여 운영하는데 산업부의 경우 R&D 지원을 위한 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라는 산하조직이 있다. KEIT는 주력산업 별로 PD(Program Director)를 두고 있는데, 보통 유관업계 전문가를 채용하여 역할을 부여한다. 다른 정부 부처들도 대부분 비슷한 산하조직을 두고 운영하는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제도권의 영역으로 정부 관료의 전문성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조직 구성과 역할 분담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예타사업에 관련되는 이해당사자 규모는 훨씬 방대하다.


예타 진행을 위해 산업부와 산하 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그룹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 그룹은 당연히 유관산업의 기업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예타 기획을 위한 방대한 업무(대부분은 자료 조사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많은 경우 정부출연연구기관(정출연)을 활용하게 된다. 정출연들은 독립적인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고 전문 인력들 또한 풍부하다. 정부는 전문성이 부족한 산업에 대한 예타를 위한 방대한 작업을 전가할 수 있고 연구기관들은 예타가 통과되었을 때 사업을 운영하고 과제들을 수주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효용이 크기 때문에 기꺼이 전담인력을 배정하여 정부의 기대에 부응한다.


이 과정에서 무리수가 발생하는데 정부는 기획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함에도 과다한 작업을 요구하게 되고 정출연은 이에 충실하게 대응하면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암묵적인 이해관계가 생기게 된다. 원론적으로 예타 결과만으로는 탈락되었어야 하는 과제가 정부, 연구기관, 그리고 예타 평가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의 은밀한 조율을 통해 통과되는 일이 발생한다. 반대로 통과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업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라지기도 한다. 은밀한 조율이라고는 했지만 이 과정에 편법이나 불법적인 요인은 없다.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예타 절차와 규정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컬럼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 관료의 전문성 부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인정 관계(실제로는 군림과 복종의 관계)로 연결된 일종의 암묵적 카르텔이 형성되어 제도를 유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R&D 예타는 최신 기술 개발에 적합한 제도인가?


예타 절차와 선정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더라도 통과된 R&D 사업이 산업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진행이 될까?


예타에 소요되는 시간은 공식적으로는 점점 단축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고시된 정보를 보면 예타기간을 7개월에서 4.5개월로 단축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순수 평가기간에 소요되는 시간일 뿐 실제 준비 기간과 통과이후 기술개발이 시작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최소 1.5년이 소요된다. 그나마도 모든 평가 절차에서 한 번도 탈락이 없이 진행되었을 경우이고 한 번이라도 탈락을 하면 재평가를 위한 준비기간과 재평가 기간을 포함할 경우 2~3년이 걸리게 된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듣게 되는 예타는 대부분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해당한다. 도로나 교각을 만드는 것과 같이 정부가 국민의 편익을 높일 수 있는 사업들의 경우에는 예타 기획과 평가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시간 지체로 인한 기술적 기회손실은 크지 않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 새로운 공법이 개발될 경우 투자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개발 사업은 다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기술 변화 주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 2~3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4차산업 시대에 기술의 수요처인 기업들은 2~3년을 기다려 줄 여력이 없다. 인공지능 기술만 하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을 정대로 기술의 교체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R&D 예타 사업은 그 태생 자체가 이미 최신 기술을 개발하기에는 제도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수의 예타가 준비되거나 진행되고 있고 적게는 수 백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의 예산을 따내기 위해 수 많은 인력과 예산이 헛되이 낭비되고 있다.


수 천억의 예산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예타에 참여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여러 예타의 사업비 규모가 대부분 수 천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에 달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러한 예산 규모에 적응해가며 수 십억의 금액에 무감각해져 있는 있는 내 자신이었다.


많은 예산도 정교하게 기획되고 투명하게 관리만 될 수 있다면 의미있는 기술개발을 위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수 천억에 달하는 예산 계획이 과연 정교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과거보다 국가 R&D 예산에 대한 투명성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우리나라의 R&D 예산 체계는 후진적이다. 예산을 구성할 수 있는 항목은 수 십년째 거의 변화가 없어 연구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예산 기획은 개발 대상에 대한 목적형이 아닌 탑다운으로 주어진 예산을 어떻게 소진할지를 계획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한 때 모 연구단지 주변의 식당들은 연구소들의 선결재로 많은 재미를 보고있다는 소문이 왕왕 있었다. 지금은 투명성 강화로 이런 부정한 방법은 단절되었다고 하지만 정부 R&D 과제 예산의 비상식적인 낭비가 사라졌을까?


불합리한 R&D 예산 기획은 수 천억 단위의 예타에서 훨씬 더 대담해진다. 예타에서의 예산 기획에서 수 천만원 단위는 쉽게 무시된다. 적게는 수억에서 수십억의 단위에서 세부 과제들이 기획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도 수 천억의 예산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경우 사업을 관리한다는 명분의 건물을 짓는 것으로 채워가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2015년 ‘조선해양 Industry 4.0s’라는 사업의 세부과제에 참여한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사업 또한 예타를 통해 기획되었다. 해당 사업의 20개 남짓되는 세부과제 중 가장 예산이 큰 것은 약 100억원 정도의 규모였고, 보통 2~30억원 정도 규모였다. 그렇다면 1,000억원의 예산 중 나머지는 어떻게 사용이 되었을까? 당시 실행 계획서는 입수할 수가 없어 R&D 이외의 세부 항목들은 확인할 수 없지만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해양 하이테크타운’(https://www.sedaily.com/NewsView/1VRY05JMFR)을 구축하는데 최소 200억의 예산이 활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대형 국책사업에서 지자체나 관련 정부출연기관에서 사업 관리와 장비를 보유한 센터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일반화 되어 있다. 일단 예타를 통과하기만 하면 중앙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이용해 건물을 지어서 별도의 조직을 만들 수 있고 장소와 조직이 생긴다는 것은 관련 지자체와 산하 기관의 물적/인적 확장을 의미한다. 이러한 확장이 정부가 투자한 만큼의 지속가능한 효과를 낸다면 의미 있는 투자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확장된 장소와 조직은 그 자체의 운영을 위해 무리해서 사업을 수주해야 하고 당시 국비로 도입했던 리소스들은 사업 완료 후 임대/대여를 통해 수익 내어 명분을 확보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 불용처리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타에서 사업을 수주한 기관은 많은 경우 기술 개발은 참여기관에 일임하고 건물을 지어 규모를 확장하고 소수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국가 R&D 사업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기형적인 현상들을 목도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논제는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연구자의 본성이 선이냐 악이냐를 떠나 결과론적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R&D 사업 체계는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인간의 물욕과 권력욕에 대한 본성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유도하고 있다. 자유로운 연구와 성과로부터의 보상을 통해 연구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보다는 정부에 잘 보이고 현혹해서 눈먼 돈을 차지해서 실패라는 평가만 받지 않으면 된다는 방향으로 연구자들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막대한 ‘눈먼 돈(세금)’을 권력화한 정부 관료의 비전문성과 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부 R&D는 기술의 수월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선비 문화가 남아 있어서인지 정부 관료들에게는 기술에 대한 경시 문화가 남아있다. 관료들은 수월성보다는 형평성을 추구한다. 즉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과감한 도전을 추구하기보다는 안정적이고 실패 확률이 최소화가 되는 방향으로, 말로는 최고 수준의 연구 지원을 통해 초격차를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차악을 선택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기에 정보 R&D 지원에 의해 세계 최고 수준의 수월성 기술이 만들어지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고 성실하고 뛰어난 실력의 연구자가 이루어낸 수월성 기술은 어떻게든 정부가 지원했다는 생색을 내기 바쁘다.


초격차 기술개발을 위해


주변에 여러 연구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극 공감을 한다. 그럼에도 아무리 제도 개혁을 주장해도 현재와 같은 국가 R&D 사업의 구조에서는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푸념을 하고 마는 연구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가지게 된다. 결국 국가 R&D사업의 혁신을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점은 현재 정부가 R&D 카르텔 척결을 외치면서도 정작 제도를 개혁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일방적으로 예산을 삭감하는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거나 또 한편으로는 선거를 의식한 예타기준완화를 발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의 개혁이 있어야만 그 이후 파생되는 여러 불합리한 일들이 제거될 수 있다. 정부관료는 현실에 안주하며 고언을 회피하고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 또한 국민혈세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바탕으로 진정으로 의미있는 R&D를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를 혁신해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간기업, 연구기관, 그리고 학계의 각성도 필요하다. 민간 기업들은 정부의 R&D 투자에 대해 방관자 또는 수혜자의 태도를 지양하고 정부 투자가 산업발전에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매의 눈으로 고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연구기관들은 최근 카르텔 논란과 같이 더 이상 연구기관이 마치 정부 R&D로 배를 불려가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정부 R&D 과제를 수주하기 위한 업무는 최소화하고 연구 비중을 최대화하여 초격차 기술을 연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연구기관이 되어야 한다.


교수들 또한 정부 R&D 사업의 떡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정부 유관부처와 연구기관의 충실한 종이 되어 교수의 직분을 망각하고 왜곡된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교육과 연구라는 본업에 충실히 하고 전문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본 컬럼의 고발에는 필자 자신도 포함이 되어 있음을 밝힌다. 대학원때부터 최근까지 정부의 다양한 R&D사업에 관여하며 그것이 독인지 약인지도 모르고 무비판적으로 그릇된 노력을 바친 긴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에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제도에 대한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절박함으로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선박들은 수면이 높을 땐 커다란 암초들이 있더라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이 줄어 수면이 낮아지면 암초들과 가까와지며 좌초 위험에 처하게 된다.우리나라의 국가 R&D 사업은 그동안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수면(투입 예산)을 높여가며 암초(국가 R&D 문제점)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저성장과 인구감소가 예상되는 환경에서 더 이상 수면을 높이는 양적 투자로는 우리나라의 R&D 경쟁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예산을 늘려가며 수면을 높일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부 R&D의 불합리성을 개혁하여 암초 자체를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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