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반지하 주택 91.8% 수도권 밀집
이주 문제 품귀현상으로…가격 급등할 수도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에 정부가 재난 대책으로 내놓은 '반지하 금지'가 주거 난민을 늘리는 것은 물론 수도권 지역의 셋값만 자극 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국 반지하 세살이의 90% 이상이 수도권에 몰린 상황에서 무작정 개체수를 줄이면 품귀현상으로 번져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에서다.
최근 전세대출 금리 인상에 따른 가파른 월세화로 매물이 줄어들면서 가뜩이나 월셋값이 치솟은 상황에 공분 피하기에만 급급한 대책은 거주자들의 주거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섞인다.
12일 정치권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서울시는 폭우 피해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지하·반지하 주택에 아예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서울시는 정부와 협의를 통해 주거 목적 용도의 지하·반지하를 전면 불허할 방침이다. 법 개정 추진에 앞서 25개 자치구에 건축허가 시 지하층은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하는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했다.
기존 반지하 주택에는 일몰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에 허가된 주거용 지하·반지하 건축물에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없애 나간다는 구상이다.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에는 더 이상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비주거용으로의 용도 전환도 유도할 방침이다.
이주민 대책을 내놓을 때는 옮겨 살 곳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대안 없는 '무작정 폐지'였다. 기존 거주자가 어디로 가든 일단 내쫓겠다는 얘기다.
실제 이 정책은 수도권에 주거 난민을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총 32만7320가구가 지하·반지하에 거주한다. 이 중 서울이 20만849가구, 경기가 8만8000가구, 인천이 1만2400가구로 전체 91.8%(약 30만명)가 수도권에 밀집돼있다.
반지하 주택이 서울 등 수도권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주거비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간한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지원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수도권 저층주거지 지하주거 임차가구의 평균소득은 182만원으로 아파트 임차가구 평균소득 351만원의 절반에 그친다. 저소득층, 비정규직 비율은 각각 74.7%, 52.9%에 이른다.
국토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자녀양육가구는 상대적으로 넓은 주거면적이 필요하므로 원룸형 비주택에 거주하기 힘들다"며 "사실상 지하주거가 저소득 자녀양육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주거 형태"라고 설명했다. 선택적 주거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 반지하 일몰제는 품귀현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셋값 상승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반지하 가구 중 절반 이상(16만7000가구)은 월세였다. 전세도 두번째로 많은 7만4000가구를 차지했다. 반지하 가구의 73.6%가 세살이인 셈이다.
어쩔 수 없이 반지하에 세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개체수가 줄어들면 당연히 수요 공급 불균형으로 가격 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서대문구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반지하 가구의 절반 이상이 임차가구인데 주거 공간을 없앤다고 세살이 형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가뜩이나 월세 수요가 많아 반지하건 옥탑방이건 매물이 부족한 상황인데 밀려난 수요가 다른 세를 찾으면서 매물이 점점 더 줄어들고 결국 월세는 물론 전세가격도 폭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정책이 아니더라도 최근 전세가격 상승에 따른 월세화로 월세 매물이 줄어들면서 월세가격은 이미 크게 오르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1월~6월) 전월세 거래량은 9만7181건이었다. 이 가운데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는 2만8015건으로 28.8%의 비중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전월세 거래량(전날 기준) 총 11만245건 중 월세 거래량은 4만4842건으로 40.7%로 비중이 늘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월세 비중은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올 상반기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51.6%로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1년 이후 월세 비중이 절반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거래량 증가에 따른 매물 감소로 가격도 치솟는 중이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실거래된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 월세 중 전용 30㎡이하 원룸의 평균 월세는 40만원, 보증금은 2703만원이었다.
현재는 월세 기준으로 크게는 60% 이상 오른 상황이다.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에 등록된 서울 반지하, 옥탑방을 포함한 연립·다세대, 단독·다가구의 월세 평균 가격은 65만원 이었다. 대학가 등 주요 입지는 더 심했다.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월세 매물을 보면 전체 127개 중 50만원 이하는 29개뿐이었다. 50만~70만원 35개, 70만~100만원 사이가 43개였다. 100만원 이상 매물도 20개나 됐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월세화 현상이 빨라지면서 월세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 인위적으로 매물 개수를 줄이면 공급수요 불균형을 크게 자극할 수 있다"며 "주거안정성을 위한 대책이지만 이주민 대책이 없는 상황에 단시간에 밀집한 반지하 주택을 줄이면 주거 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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