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익 한국사회투자 대표
초고속으로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전세계의 인구는 급속히 늘고 있다. UN의 발표에 따르면 지구상의 인구는 2050년 약 100억명에 다다른다고 예상되고 있다. 인구가 증가되면 가장 큰 문제가 식량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농업 생산성도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긴 하지만, 현재의 식량 생산방식으로는 높은 인구 증가율을 따라잡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농촌도 갈수록 도시화되고 있어 경작가능한 농경지와 농업 인구도 급속히 감소되고 있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의 혁신을 선도하는 벤처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분야를 농업(Agriculture)와 기술(Technology)을 합친 용어인 애그(어그)테크(AgTech)라고 부른다.
애그테크는 80년대 활발했던 농업의 기계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농업이 그린바이오, 정밀농업, 스마트팜과 같은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생명공학, 인공지능, 로보틱스, 디지털 등의 기술과 융합돼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투자자와 빅테크 기업들의 관심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고 애그테크 유니콘들이 계속 탄생되고 있다.
산업 성장 측면에서 볼 때 애그테크 산업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업모델에 대한 가설검증이 명확하다. 유전자변형과 같은 분야는 검증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눈으로 수확량 증대나 품질 향상 등 결과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산(Replication) 이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셋째 전·후방 연관산업으로의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이와 같은 장점으로 농업은 더 이상 구산업이 아니라 미래산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애그테크 산업은 크게 후방산업 분야와 전방산업 분야로 나뉜다. 후방산업은 심고, 기르고, 거둬들이는 분야를 말한다. 전방산업은 가공·유통·소비가 주축 분야이다.
후방산업의 대표 분야로는 바이오 기술 기반의 바이오 종자, 비료, 미생물,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팜,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밀 농업 기술과 같은 분야가 있다. 전방산업의 대표 분야로는 대체/배양육, 메디푸드, 3D 식품 프린터, 식물 부산물 활용 고기능성 원료 등이 있다.
푸드테크 분야 전문 벤처캐피탈인 미국 애그펀드(AgFunder)의 2023년도 투자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투자 1위를 차지한 애그테크 분야는 식품전자상거래(eGrocery)로 분석됐다.
이어 가공기술(In-store Technology)과 혁신식품(Innovative Food) 이 차례로 2, 3위에 자리잡고 있어 전방산업에 대한 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후방산업인 실내농업(Novel farming), 농생명공학, 바이오소재, 농장관리소프트웨어, IOT는 4위 이후로 자리하고 있어 전방산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더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년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꼬리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단백질 블록은 일종의 대체 식품이지만 이 분야의 기술 발전은 놀랍다.
현재는 단백질 등 주요 식품 요소를 인공적으로 합성하고 원하는 형태로 3D 프린터로 만들어 내는 단계까지 발전됐다. 비싼 단백질인 소고기를 대체하는 식품은 과거에는 버섯 등을 활용해 소고기 맛과 육질을 내었다면 지금은 인공적으로 단백질 조직을 기르는 배양육 단계로 기술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유니콘으로 성장해서 시장에 안착한 대체육 스타트업이 있다. 비욘드미트(Beyond Meat) 와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가 그 주인공이다. 빌게이츠도 투자한 비욘드미트는 이미 KFC 등 대형 패스트푸드체인에 유통 되고 있다.
비욘드미트의 경쟁자인 임파서블푸드는 콩뿌리 추출물로 실제 고기와 맛과 색상을 유사하게 구현하고 있다. 배양육 분야는 아직까지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실제 고기와 똑같이 만들 수 있지만, 세포 배양과 증식 비용이 가격경쟁력을 갖추려면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인 씨위드, 위미트, 인테이크와 같은 기업이 배양육 분야에서 세계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1999년 미국 컬럼비아대 딕슨 데포마 교수가 처음 수직 식물공장을 제안한 이후 스마트팜 분야는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다. 초기에는 실내에서 빛, 물, 영양분 등 주로 식물의 생장 조건을 최적화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면 현재는 ICT, Bio,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접목돼 생산성과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에어로팜스가 대표 기업이지만 그린플러스, 엔씽, 팜에이트와 같이 기업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스마트팜의 장점은 소비자가 거주하는 지역에 시설을 설치해 물류비가 대폭 절감되고 단위당 높은 생산성과 물, 비료, 농약 등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로봇이나 드론 등의 활용도 애그테크의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드론은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활발히 이용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각 종 기능성 로봇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모종, 제초, 비료, 농약, 수확 등 분야에 특화된 로봇이 실용화되면서 점 차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긴트, 랑데부, 메타파머, 에스엔솔루션즈, 에이엠알랩스 등 많은 국내 스타트업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최근에는 하드웨어 위주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소프트웨어 기술이 결합돼 더욱 고도화되고 있다. 어벨브, 아이오크롭스, 크로프트 등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린 바이오 분야도 크게 성장하는 분야다. 종자에 미생물로 코팅을 입히는 종자코팅 기술로 비료 없이 작물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기업인 미국 인디고(Indigo)는 10억달러 넘게 투자를 받은 대표 주자이다. 그린바이오 분야는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 플라스틱 등 소재, 식물 성분을 활용한 의료, 건강 제품, 미생물 농약 등 활용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국내에서는 굴폐각을 활용 폐수처리 화학약품을 대체하는 제품을 만든 오이스텍, 곡식껍질, 녹차찌꺼기 등과 같은 각 종 부산물로 셀룰로오스 폴리머를 합성해 다양한 친환경 용기를 만드는 그린패키지솔루션, 어라운드블루 등이 대표 선수이다.
러시아의 연 이은 우크라이나 곡물창고 공격으로 밀, 옥수수 등 곡물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 또한 뉴 노멀로 자리잡은 글로벌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저 개발국가의 국민들에게는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세계 식량위기가 도래할 것 같은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비록 애크테크가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으나 애크테크의 빠른 성장이 지구적인 빈곤와 식량의 문제를 해소하는데 크게 일조를 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폐업이나 인력 감축과 같은 우울한 스타트업 뉴스가 들려온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감원, 폐업, 인수합병과 같은 소식들은 경기 침체가 거의 마무리될 때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다행히 최근의 주요 경제 지표들은 세계 경제가 그간의 침체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찬 전망을 보여준다.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기에 매우 취약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 선진국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고 있고 대기업에 공급망과 투자가 연결된 스타트업은 더욱 영향이 크다.
애크테크 분야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이고 비교적 경기에 영향을 덜 받는 미래 산업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뒤쳐져 있다. 전술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세계 투자액의 절반이 미국이고 아시아, 유럽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스타트업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농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애크테크 분야 혁신 창업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애그테크 기업의 도약과 성장이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산업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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