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진두지휘, 100년 두산家 소비재 명가 재건 '도전장'
최초 심야영업·부엉이 캐릭터·女心잡는 핑크컬러 '승부수'
"사장님, 저희가 광고는 정말 잘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광고가 아무리 멋지게 나와도, 슈퍼에 가서 정작 실제 제품을 보면 아무도 안 살 것 같습니다.……저희가 다시 디자인해 보겠습니다. 사실 저희야 광고만 만들면 그만이지만, 이대로는 승산이 없을 것 같아서 말씀드려보는 겁니다."
박서원 두산 전략담당 전무가 광고디자인 회사 빅앤트의 경영자였던 지난 2011년 해태제과로부터 껌 신제품 광고를 의뢰받아 첫 미팅에 나갔을 때 한 말이다.
미팅 첫 날 제품에 대한 소개를 듣자마자 박 전무는 "디자인을 다시 해야 한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내부 전문가들이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을 두고 처음 접한 사람이 승산이 있느니 없느니 평가를 한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광고 의뢰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 전무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보이는 데 모른 척 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아서" 제안을 했고, 결국 제품 디자인을 다시 해 성공을 거뒀다. 박 전무의 승부사(?)적인 기질을 짐작할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개장한 두타면세점에는 박 전무의 이 같은 기질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참여업체의 급증과 절대 강자가 존재하는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두타면세점이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는 박 전무의 '승부수'가 통해야 한다.
박 전무는 스스로 "청개구리 기질을 타고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기존의 방식과는 어떻게든 다르게 가려는 오기 같은 것이 있다. 이미 있는 것, 누군가 걸어간 길은 내게 전혀 흥미롭지 않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모습을 드러낸 두타면세점은 기존 면세점이 전혀 가보지 않았던 길 중 하나를 가보겠다고 선언했다. 바로 '심야영업'이다.
두타면세점은 오전 10시30분에 개점해 품목에 따라 층별로 오후 11시, 혹은 새벽 2시까지 운영된다. 업계 최초 심야면세점이다.
개장 당일 이천우 두산 유통부문 부사장은 "오후 9시 이후 활성화되는 상권을 가진 동대문지역 특성을 반영해 심야면세점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대문 패션점인 두타는 이를 반영해 이미 새벽 5시까지 문을 열어왔다. 심야영업 면세점의 성과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사장은 "실제 심야시간 영업이 얼마의 효과를 낼지 단정할 수 없지만 두산타워 패션몰의 경우 오후 9시 이후 매출이 전체 30%를 차지하는 만큼 면세점도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두타면세점은 또 국내 면세점에서는 처음으로 캐릭터를 적용했다. 바로 '부엉이'다. 심야면세점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박 전무의 아이디어이다.
면세점 오픈 행사 후 두타면세점은 두산타워 광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부엉이 모양 풍선을 나눠주면서 캐릭터를 홍보했다. 두산 관계자는 "두타면세점의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타면세점의 부엉이는 '핑크색'이다. 부엉이의 일반적인 색은 황갈색·갈색·회색·검정색이다. 박 전무는 이미 있는 것에서 벗어나 '핑크색 부엉이'를 만들어냈다.
핑크색은 두타면세점의 또 다른 상징이다. 핑크는 두타면세점의 메인 색상이다. 부엉이 캐릭터는 물론이고 매장 내부 상호, 인테리어와 집기, 쇼핑백 등에 이르기까지 온통 핑크색으로 도배됐다. 이는 두타면세점이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핑크색은 여성의 색이다. 핑크의 부드러운 색은 꽃향기를 연상시키거나 로맨틱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여성을 상징으로 한 화장품이나 옷 등에 주로 사용된다. 아울러 핑크색은 부드러움과 행복, 귀여움의 대명사인데다가, 실제로 여성 호르몬의 분비를 높이고 만족한 기분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부사장은 "박서원 전무가 핑크 컬러와 상품을 포함한 모든 매장 인테리어와 면세점 내 마련한 체험 공간 등 마케팅 관련 콘텐츠 구성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두타면세점은 면세점 사업 허가를 받을 당시 첫 해 5000억원의 매출 목표를 밝혔다. 이 목표는 하향 조정 될 예정이다. 경쟁 환경이 당시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부사장은 "아직 면세점 내 모든 매장이 문을 열지 않아 매출 수치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개장일에 박 전무는 즐겨 입는 블랙&화이트 차림의 정장에 핑크빛 넥타이를 매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테이프 컷팅을 했다. 하지만 테이프 컷팅 직후 박 전무는 두타면세점의 성공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일체의 답변을 하지 않고, 긴장된 표정으로 안전요원의 보호를 받으며 바로 집무실로 올라갔다.
한편 이 부사장은 두타면세점 개장과 관련해 "이제부터 시작이니 열심히 해 반드시 성공시켜 달라"며 "100% 지원하겠다"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말도 전했다. 격려이기도 하지만 '면세사업'의 성공여부는 시간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면세점이 문을 열면 연간 1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시대는 다점포 체제의 개막으로 옛날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1조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해도 연간 19조원(2015년 기준)에 육박하는 그룹 전체매출에서 보면 그리 큰 규모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두타면세점은 두산그룹 유통 사업의 핵심인데다,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무엇보다 두타면세점은 한국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에서 출발하고 '동양맥주'로 일가를 이룬 두산그룹 소비재 사업의 명성을 재건하는 선두주자 격이다.
두타면세점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 전무는 "물었으면 끝장을 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설립한 광고회사의 경영자가 아닌 100년 기업 두산의 유통전략 책임자로서 두타면세점을 '물었'다. 박 전무의 '끝장'은 어디까지일까.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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