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사태·저축은행 사태·사모펀드 사태' 규제완화 뒷받침할 감독 기능 부재가 원인
"감독 역량 강화, 공공기관 지정 등 시스템 쇄신이 급선무"…방법은 '금융감독 체계 분리'
[편집자주] 금융감독체계 분리에 대한 요구가 오래됐다. 정권 교체기에 여야를 상관없이 제기됐다. 학계에서도 금융 정책과 감독 기능의 분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학계에서 윤석헌 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에 앞장섰다. 그의 임기말이다. 차기 정권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실현될지, 3회에 걸쳐 진단한다.
십수년간 금융감독체계 개편 문제가 왈가왈부된 데에는 끊이지 않는 대형 금융사고에 있다.
2003년 신용카드 위기,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2014년 카드사 고객 정보 유출 등 외환위기 이후에도 국내 금융 역사에 획을 긋는 굵직한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 문제가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과도한 규제완화였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폭제가 된 것은 완화된 규제를 뒷받침해야 할 감독기능의 부재였다. 자동차에 가속장치를 달았지만, 제동장치는 빼먹은 셈이다.
결과는 사고로 이어진다. 금융위기 이후 급격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소비 심리는 냉각됐다. 침체된 경기로 당시 정부는 부양의 필요성을 직면하게 됐고, 이를 위해 신용카드 활성화가 동반됐다.
당시 정부는 1999년 5월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월 70만 원의 현금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한도 제한 조항'을 없앴다. 카드사의 가두발급규제도 시행하지 않았다. 2003년 신용카드 위기를 불러일으킨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다.
이에 따라 카드사는 채무상환능력이 없는 신용도 낮은 개인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줬다. 당시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수는 4.6장에 육박했다.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은 무절제한 과소비로 이어졌다. 이 시기 신용카드 연체율은 28%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구제금융 당시 193만명이었던 신용불량자는 신용카드 사태 직후인 2004년 382만4000명으로 불어났다. 이 시기 출혈 경쟁에 나선 신용카드사들은 경쟁적으로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서면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까지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382만명의 신불자 80%는 신용카드로 신용 불량자가 됐다.
정부가 뒤늦게 길거리 모집 금지, 대학생에 신용카드 발급 금지에 나섰지만 카드사 경영 부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용불량자 수는 400만명까지 불어났고 13% 수준이던 카드사들의 자기자본비율은 -5.4%대로 붕괴됐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도 큰 틀에서 보면 다르지 않다. 사태를 일으킨 저축은행의 부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축은행들은 2000년대 들어 본업인 서민 대출에서 벗어나 시중은행이 독점해온 건설사 대출사업인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저축은행 업계의 2010년 말 PF 대출은 17조4000억 원에 달했고, PF 대출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시기 정부는 '개인 대출한도 상향조정, 법인 대출한도 폐지' 등의 규제완화를 단행했다.
PF 대출은 부동산 바람을 타고 2005~2007년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나 2008년 말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부실화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저축은행의 부실로 이어졌다.
금융위원회는 2011년 1월 4일 삼화저축은행에 첫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한 달여 뒤인 2월 17일 업계 1위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그해 모두 15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2012년 5월 6일 일요일 새벽 6시에는 김찬경 전 회장의 미래저축은행을 포함해 당시 업계 1위 솔로몬저축은행·한국저축은행·한주저축은행 등 4곳에도 영업정지 철퇴를 내렸다. 2012년에도 모두 8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지난 2011년 대규모 금융 피해자를 양산한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을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지목하고 있다. 당시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권혁세 서울대 경영학과 초빙교수는 "저축은행의 취약한 자본력, 지배구조, 이용 고객의 낮은 신용도를 감안하면 각종 건전성 감독 기준을 은행보다 더 엄격히 적용했어야 함에도 오히려 규제의 고삐를 늦춤에 따라 저축은행들이 방만한 경영으로 리스크 관리를 실패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기본적으로 금융사 내부통제 실패에 따른 것이지만, 감독당국이 금융회사의 고객 정보 유출 사고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사건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정보 유출이 일어났을 때 해당 금융회사 대부분이 '기관주의'와 과태료 600만 원 정도의 징계를 받았을 뿐 피해 규모에 비하면 그다지 강력한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 같은 제재 방침은 2014년 카드고객정보 유출이 터지고 나서야 정정됐다.
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2014년 1월, KB카드, 롯데카드, NH카드가 보유한 고객 정보를 빼돌린 사건이다. 유출된 고객 정보는 KB카드 5300만 건, 롯데카드 2600만 건, NH카드 2500만 건으로 모두 합해 1억 건이 넘어, 지금까지 벌어진 금융회사 고객 정보 유출 사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일련의 사고에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금융당국의 감독기능 부재를 부각시킨다. 이는 현행 감독체계가 금융소비자 보호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의문과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 최근 불거진 사모펀드 사태는 누적된 개편론을 폭발시킨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한 셈이다.
특히 이번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된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4년 금융위원회가 정부입법으로 발의하고 이듬해 통과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라 개인 투자자의 최소 투자금 한도는 기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인하됐다.
또한 전문투자형 사모집합투자기구(헤지펀드)의 등록 요건도 종전의 2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문턱을 낮추면서 펀드 운용사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이 가운데 부실한 펀드·채권을 무분별하게 판매하는 악성 펀드운용사가 나타나는 사각지대가 나타났다는 얘기다. 역시 이에 따른 감독 기능은 부실했다.
현행 금융당국 시스템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제2, 제3의 라임사태는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위와 금감원 간 괴리감이 시장 관리·감독의 비효율성을 높이면서 금융 시스템의 퇴행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금융권은 감독 역량 강화, 공공기관 지정 등 시스템 쇄신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 지난해에는 '사모펀드 환매중단사태로 본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현행 금융감독기구체제의 문제점은 금융 감독의 독립성 확보가 미흡하다는 데 있다"면서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과 금융감독 기능의 분리 필요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실제 지난 2013년 동양사태 당시 금감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먼저 인지했음에도 감독규정에 대한 제·개정 권한이 없어 지지부진한 사이 사태의 심각성을 키웠다고 예를 들었다. 이어 "2018년 삼성증권 배당사고를 비롯해 최근 은행들의 DLF 위반 사태와 운용사들의 부실 펀드 판매 등은 양 기관의 수직적이고 이원적인 금융 체제로 인해 문제를 적기에 해결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도 힘든 이 같은 체계를 수정해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 기능은 독립된 금융감독기구로 이관, 독립적이고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동훈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사모펀드 이슈는 규제완화가 가진 긍정적 측면을 살리고 부정적인 것을 단절할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금융사고 발생 이전에 전조현상을 인지해 감독체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자체 능력을 강화하는 데 힘쓰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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